원나라 전통 복식을 한 모녀. 머리 모양
에서 결혼한 여성과 미혼 여성의 차이를
알 수 있다. 박문사 제공
중국 원나라 때인 1347∼1353년 대도(大都·베이징)에 살던 고려인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고급 중국어 회화책 ‘박통사(朴通事)’가 처음 현대 우리말로 번역됐다. 박통사는 ‘박 씨 성을 가진 통역관’이라는 뜻.
정승혜 수원여대 교수와 김양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선임연구원, 장향실 상지대 교수, 서형국 전북대 교수 등 4명의 국어학자가 8년간의 작업을 거쳐 총 3권으로 내놓을 박통사 시리즈 중 첫 번째인 ‘박통사, 원나라 대도를 거닐다’(박문사)를 최근 펴냈다. ‘박통사’는 16세기 초 ‘번역박통사’와 1677년의 ‘박통사언해’, 1765년의 ‘박통사신역’ 등으로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수정 번역돼 조선후기인 19세기까지 중국어 회화책으로 사용됐다. 원본은 전하지 않는다.
회화책이 그렇듯 이 책에도 당시 원나라의 풍습과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장면이 많이 소개돼 있다. 고려 여인으로 유일하게 중국의 황후가 된 기황후의 영향 때문인지 당시 중국 대륙에서는 오늘날 한류 같은 고려양(高麗樣)이 유행했다. 고려의 승려 태고화상 보우(普愚)가 대도에서 법회를 연다고 하니 원나라 관리와 박통사로 추정되는 주인공은 만사를 제쳐두고 고승의 법회에 참여하기 위해 한바탕 법석을 떤다.
여가생활로는 활쏘기를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활 당기는 데는 활 당기는 힘이 따로 있고, 술 먹는 데는 술 먹는 배가 따로 있다’ 편에는 활터에 나가는 장비와 활쏘기를 하면서 내기를 하는 모습이 담겼다. ‘술배가 따로 있다’는 표현은 이때에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차용증서를 써주고 돈을 받는 풍습도 나온다. ‘대서료를 치르고 서류를 가져가게’ 편에는 조보아라는 사람이 돈을 빌리면서 학식 있는 선비에게 차용증서를 써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원나라 생활문서 양식의 하나인 차용증서 쓰는 법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인 듯 예제가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이 밖에 상류층 자제의 호화로운 결혼풍속이 담긴 ‘하룻밤 부부 인연이라도 100일 밤의 애정이라’ 편, 시장에서 양가죽을 사면서 흥정하는 ‘고려의 돈을 얻어갔으니 30년은 잘될 겁니다’ 편, 기마민족답게 말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은 횡재를 못하면 부자가 될 수 없고, 말은 밤 여물을 못 먹으면 살찌지 못한다’ 편 등도 흥미롭다.
정 교수는 “‘박통사’는 고급 회화서인 동시에 고려인의 ‘대도 생활 길라잡이’ 역할을 했다”며 “꼼꼼한 서술 덕택에 당시 화폐의 가치와 사라진 옛 지명을 찾아내는 논문을 쓰는 데도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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