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소녀가 아빠의 손을 잡고 경기도 광릉 시각장애인 식물원에 가서 손으로 나무들을 만져본다. 이건 소나무야, 이건 도토리나무고 이건 진달래야 아빠가 어린 딸에게 자꾸 말을 걸자 소나무가 빙긋이 소녀를 보고 웃다가 소녀의 손바닥에 어린 솔방울 같은 눈동자를 하나 쥐여준다 시각장애인 식물원에는 꽃들이 모두 인간의 눈동자다 나뭇잎마다 인간의 푸른 눈동자가 달려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흰 지팡이를 짚고 더듬더듬 식물원으로 들어서면 나무들이 저마다 작은 미소를 지으며 시각장애인들의 손바닥에 하나씩 눈동자를 나눠준다
―정호승의 ‘시각장애인 식물원’중에서 》
# “안녕하세요. TV에서 봤는데….” 청계광장에서 한 아이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주저하며 쉽게 다가서지 못할 때, 그녀가 먼저 다가갔다. “몇 살이니?” 몸을 낮춰 아이의 눈높이에 맞췄다. 넋을 놓고 아이와 이야기를 한다. 인터뷰를 재촉하자 그때서야 대답이 돌아왔다. “어휴, 이 또래 여자애들만 보면 이런다니까. 우리 딸이 생각나서. 정말 예쁘죠?”
#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다. 최근 방송 예능 프로그램에서 친근한 이미지를 발산하며 ‘국민 할매’란 별명을 얻었지만 직접 만났을 때 말을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 앞에선 달랐다. 그는 ‘한국 록 음악의 전설’도 ‘부활의 리더’도 아니었다. 친구였다. 사진 촬영 중에도 아이들 인사를 놓치는 법이 없었다. 몰려든 아이들과 눈을 맞추며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 즐거움이 담겼고 진심이 묻어났다.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혹시 아이 있어요?” 결혼도 안 했다고 대답하자 웃으며 말했다. “아이가 생기면 배울 겁니다. 친구가 되는 방법을….”
국회의원 나경원(48)과 가수 김태원(46). ‘그녀’ 나 의원은 타고난 모범생이었다. 학창시절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판사, 변호사, 정치인으로도 탄탄대로를 달렸다. 반면 ‘그’ 김태원은 철저한 아웃사이더였다. 학교가 싫어 주변을 맴돌았고, 대신 음악에 미쳤다. 음악에선 최고였다. 기타리스트, 작곡가로서 이미 ‘살아있는 전설’ 반열에 올랐다. 유명하다는 걸 빼곤 전혀 닮은 게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사실 커다란 공통분모가 있다. 나 의원의 딸 유나(18) 양은 다운증후군, 김 씨의 아들 우현 군(11)은 자폐증을 앓고 있다. 마음이 아픈 아이를 가슴으로 키운다는 점에서 둘은 닮았다. 이들을 12일 오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만났다. ○ 아픔은 나누면 ‘위로’, 감추면 ‘상처’가 된다
웬만해선 만나기 힘든 두 사람을 모처럼 한자리에 모았는지라, 질문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고민 끝에 다양한 사람들의 질문을 모아 엄선했다. 복지재단 이사, 다운증후군과 자폐증 아이를 둔 엄마들, 연예인, 실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 등으로부터 질문을 받아 두 사람에게 전달했다. 인터뷰 도중 김 씨는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아이를 가진 부모”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 이날만큼은 국회의원이란 명함도 연예인이란 호칭도 필요 없었다. ‘부모’라는 두 글자로 충분했다. 분위기는 훈훈했다, ‘아픔’이란 단어도 이들 입에선 ‘희망’이란 메시지로 전달됐다. -장애 아동을 둔 부모들은 보통 그 아픔을 숨기려 한다. 자신의 사연을 사회에 알리게 된 이유는….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
김 데뷔한 지 27년이 지났지만 사실 내 이름을 알린 건 최근 2년이다. 25년 동안은 무명에 가까웠다고 할 정도로 척박했다. 내가 그룹의 리더지만 존재감은 확실히 부족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아이 이야기를 할 시간도, 장소도, 이유도 없었다. 최근 유명세를 타면서 자연스럽게 이젠 이야기할 때가 된 게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쉽게 말해 그런 상황을 만난 거다. 어렵게 얘기를 꺼낸 게 아니냐는 사람도 있지만 할 때가 돼서 말한 것뿐이다. 나 나 역시 일부러 알리려고도, 숨기려고도 하지 않았다.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 거다. 사실 정치를 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유나다. 판사로 있을 땐 그냥 내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닥치는 여러 가지 현실에서 우리 사회를 바꿔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김 이런 아픔을 표현하는 게 많은 분에게 희망을 주는 일 아닌가. 나 그렇다. 한번은 수원에 지원 유세를 갔는데 굉장히 허름한 국밥집 주인아주머니가 내 손을 잡으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우리 아이도 아파요”라면서. 뒤돌아 나오면서 나도 눈물이 났다. 그 어머님이 나한테 기대하는 게 있을 텐데….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지 반성했다. 김 누군가 아픔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훨씬 위로가 된다. 나 맞다. 아픈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무조건 불편하게 생각하고 감추면 안 된다. 그것이 궁극적으로 아이의 부모들이나 가족들에게 더 큰 아픔이 된다. 김 나도 얼마 전 내 사정을 밝힌 후 많은 분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동질감을 느낀다고, 힘이 된다고 하더라. 내 음악이 히트 쳐서 오는 기쁨보다 훨씬 더 큰 희열을 느꼈다. ▼ “아빠 어디있어”라는 말 듣는 데 11년 ▼
-김태원 씨께. 아이 키우기 위해 필리핀을 선택한 이유는? 그곳 환경이 교육에 도움이 되는가.(권택수 새꿈터(장애 아동 직업재활 공동체) 원장)
김 사실 집사람과 아이들은 큰애(딸 서현) 때문에 6년 전 필리핀에 갔다. 지금 중학생인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다. 당시 큰애가 학원을 전전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난 아이가 공부 잘하길 원하는 아빠가 아니다. 내가 잘한 것도 아니고.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했다. 영어가 문제라면 필리핀 같은 데 가서 공부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 가깝고, 물가도 싸고…. 둘째 우현이를 낳곤 처음 5년 동안 (그 아이의 아픔을) 인정하지 않았다. 내 마음 속에선 혼란이 극한을 달리고 있었다. 특히 사람들의 시선이 아팠다. ‘(그래도 당신들보단) 우리가 낫다’고 바라보는 시선. 그게 인간의 본성이겠지만 아이 키우는 부모로선 상처가 됐다. 아내도 상처를 많이 받았고, 그렇게 떠난 지 6년이 지났다. 필리핀에선 우현이를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특별한 아이로 여긴다. 그게 우현이에게는 좋다고 생각한다.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이 대목에서 김 씨의 목소리가 커졌다. 하고 싶은 말이 더 많은 듯했다. 하지만 “말을 아끼겠다”고 했다. 그는 “예전엔 불만과 냉소로 사회를 바라봤지만 이젠 희망을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또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가 조금씩 장애 아동들에게 마음을 열고 있긴 하다”고 덧붙였다.
○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아팠다 -나경원 의원께. 보통 다운증후군 아이들이 20대가 되면 부모들이 특히 힘들어 한다. 딸일 경우 고민이 더 크다. 의원님 역시 유나가 성인이 됐을 때 직업, 연애, 결혼, 임신까지 고민해야 할 텐데…. (권택수 새꿈터 원장)
나: 실제로 고민이 많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아이들이 갈 곳이 없다. 유나는 대학에 가고 싶어 한다. 드럼을 좋아한다. 실용음악과에 가는 게 꿈인데 가능할지는 타진해 봐야 한다. 김 드럼을 좋아한다면 나한테 와야겠다. 콘서트에 한번 왔으면 좋겠다.(웃음)
나 유나는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많다. 임신은 의학적으론 가능하다고는 하는데…. 아이가 그런 꿈을 가지고 있기에 정말로 우리 애가 가정을 꾸릴 수 있도록 도와줄 생각이다.
김 그래도 꿈이 있다는 게 아름답지 않나.
나 그렇다. 좋아하는 남자 친구도 있다. 근데 유나가 좀 터프해서….(웃음)
김 우리 아인 11세지만 인지하는 능력이 세 살 정도다. 처음엔 어떻게 하면 5세로, 7세로 빨리 올릴 수 있을까 고민했다. 5년을 그러고 살았다. 지금은 아이가 40세가 됐을 때 인지 능력이 네 살로 올라서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기다리는 법을 익혔고, 기다려야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아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일찍 집에 들어갈 때가 있다. “아빠 어디 있어?”란 말을 듣는 데 11년이 걸렸다. 슬프지만 아름다운 얘기다. 내 아내는 이런 아이가 너무 귀엽다고 한다. 몸만 크지 아직 아기니까. 오히려 더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한다.
▲동영상=토요섹션 나경원&김태원 1
-엄마가 우는 모습을 자주 봐요. 아줌마, 아저씨도 우시나요.(김다현·14·다운증후군 장애아동)
김 눈물 흘릴 겨를이 있을까.
나 크게 흘린 건 2번이다. 사법연수원에 있었을 때 유나를 낳았다. 의사들은 아이의 생김새만 보면 출산 직후에 대충 안다. 산모도 의사와 간호사의 호흡이 이상해지는 걸 본능적으로 느낀다. 처음 출산이어서 아이들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고, 내 아이가 그런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크게 울었다. 원래 아이를 사립초등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었다. 교장 선생님을 만났는데 “어떻게 감히 장애아를 가진 엄마가 사립학교에 왔나. 다른 애들과 똑같은 아이로 키울 수 있느냐”고 반말로 얘기하더라. 그때 충격으로 많이 울었다. 그래서 법조문까지 찾아 학교와 싸웠다.
김 우리보다 불우한 환경에서 더 불이익 당하는 사람들도 많다. 신이 계신다면 이제는 그런 분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일을 하실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나 저는 법을 만들고, 태원 씨는 사람들의 마음을 많이 움직여 주셨으면 좋겠다.
김: 당연하다. 그래도 작은 일이라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축복이고 영광이다.
-김태원 씨께. 얼마 전 방송에서 “아이와 대화하는 꿈을 꾼다”고 했다. 만약 아이와 대화할 수 있는 시간이 1분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가.(최선영·43·자폐증 아이를 가진 엄마)
김 지금 우리 우현이 나이 때, 내가 우리 아버지와 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난 막내아들이라 아버지의 사랑을 특히 많이 받았다. 내가 그때 아버지께 했던 행동들이 많은데, 우리 아인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런 것에 대한 그리움이 꿈에서 나타난다. 난 일상에선 눈물 흘린 적이 없지만, 사실 꿈에선 많이 운다. 깨어날 때 그 기분은 섭섭함, 허무함이라 해야 하나? 말할 수 없는 그리움 같은 게 있다. 사실 그저 우현이가 나한테 뭐 하나 사달라는 말을 해 줬으면 좋겠다. 아주 옛날엔 돈이 없어 못 사줬다. 지금은 약간 여유가 생겼다. 그런데도 사줄 수 없다는 게 아프다.
-나 의원께선 아이가 정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나 글쎄. 이젠 사실 아이만 쳐다보면 행복하다. 찌들고 힘들 때도 유나가 보낸 문자만 보면 막 웃는다. 얼마 전 내 친구가 우리 애랑 동갑내기 딸을 데리고 왔더라. 고등학생쯤 되니 애들이 숙녀처럼 하고 다니더라. 우리 딸은 여전히 터프한 초등학생 같은데…. 가끔은 엄마가 치마 좀 입자고 하면 말을 들어주는데, 그래도 터프한 복장을 좋아한다. 그런 게 좀 아쉽긴 하다. (웃음)
김 터프하니까 드럼을 치는 거다. 드러머는 터프해야 한다.(웃음) 사실 음악만큼 위대한 게 없다. 음악으로 모든 게 치유된다. 그래서 유나가 부활 콘서트에 왔으면 좋겠다. 이름도 좋지 않나. ‘부활’이다.(웃음)
○ 위암? 공포는 없었다… 아이에게 미안했을뿐
-나도 딸이 있다. 아이 때문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가.(이재용·40·안과의사)
김 조금씩 나아지는 것에 대한 희망이 희열이다.
나 나도 비슷하다. 우리 아이에겐 사소한 것 하나를 가르치는 데도 여러 단계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빨대로 빠는 것도 여러 단계로 끊어서 가르쳐야 한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연습시켜서 아이가 그걸 할 때, 그 일상이 기쁨이 된다.
김 나와 아내의 철칙은 아이를 크게 혼내거나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거다. 그걸 지금껏 지켜 왔다. 다른 분들이 우현이를 만난 뒤 “아이가 온순하다”고 얘기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행복하다. 아이한테 고맙다.
-영화 ‘말아톤’(자폐증을 앓고 있는 청년과 그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을 보면 아이 엄마가 “애보다 하루를 더 살고 싶다”고 얘기한다. 그 말이 결국 두 분이 겪는 현실 아닌가.(박시후·33·연기자)
김 분명히 그렇다. 결국 그런 소원을 빌게 된다. 아이를 내 품에 두고 싶은 거다. 그런데 사실 그게 가능하지 않지 않나. 부모 나이가 더 많은데 말이다. 그저 소원인 거다.
나 다운증후군을 앓는 사람은 보통 수명이 짧다. 20세가 지나면 노화도 빨리 온다. 엄마가 아이보다 하루라도 더 살고 싶은 건, 아이를 놓고 가기엔 세상의 보호가 너무 없고 또 불안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이어나가던 나 의원의 얼굴이 그가 입고 있던 붉은 색 재킷만큼이나 붉게 달아올랐다. 당차던 목소리도 가늘게 떨렸다. 나중에 나 의원은 “영화 ‘말아톤’을 여러 번 봤다. 사실 난 남들이 다 웃는 장면에서도 웃지 못했다. 가혹한 현실이 가슴에 와 닿아 마음을 찔렀기 때문”이라고 했다.
▲동영상=토요섹션 나경원&김태원 2
-김태원 씨의 건강검진이 화제다. 암 선고를 받았을 때 가족 생각이 많이 나던가. (김 씨는 최근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 건강검진에서 위암 초기 판정을 받았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는 수술 직후에도 무대에 오르는 등 열정을 과시했다.)
김: 그렇다. 가족 생각만 났다. 위암 선고를 받은 뒤 음악에 대한 걱정은 아예 없었다. 처음 떠오른 게 둘째 아이(우현), 그리고 아내와 첫째 아이였다. 우리 네 사람의 ‘틀’이 깨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공포. 이상할 정도로 죽음에 대한 공포는 없었는데, 내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또 내가 너무 비겁하다고 그날 밤 혼자 되뇌었다. 위에서 무언가 발견되고 다른 장기도 내시경을 해야 할 상황이 됐을 땐 느낌상 암이 온몸에 다 퍼져 있을 것 같았다. 너무 험하게 살았으니까. 몸에 좋은 걸 못 먹고 살았으니까. 나쁜 것만 하고 살았으니까. 가족에겐 내 몸에 뭐가 있다는 이야기를 못했다. 너무 미안해서. 결국 끝까지 못하다가 수술 며칠 전에 얘기했다. 수술대에 들어갔다가 못 나올 수 있으니까. 사실 그러면(수술대에 들어갔다 못 나오면) 진짜 비겁한 건데…. 수술이 굉장히 간단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계속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다. 미안한 마음밖에 없었다.
-10년 뒤 아이들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나.(김인자·용문심리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
나 난 아이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있거나 엎드려 있을 때가 제일 속상하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김 우현이는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 초야에 묻혀서 그림을 그려도 좋다. 죽을 때까지 좋아하는 걸 했으면 좋겠다.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건 일반인들에게도 어렵지만 말이다. 두 사람과 인터뷰 일정을 잡는 건 쉽지 않았다. 나 의원은 선거를 눈앞에 두고 지원 유세를 위해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상황이었다. 김 씨 역시 빡빡한 공연과 방송 일정에 위암 치료까지 병행하느라 인터뷰를 일절 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이 아픈’ 아이를 둔 부모들에게 힘을 주자는 말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청계광장에서 시작된 인터뷰는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 스튜디오로 옮겨 갔다. 나 의원은 “오랜 만에 진심이 통하는 얘기를 나눴다. 기분 좋다. 내가 제일 누나니 밥을 사겠다”며 예정에 없던 ‘런치 타임’까지 제공했다. 그 덕분에 만남은 예정된 1시간 반을 훌쩍 넘겨 4시간가량 이어졌다. 인터뷰가 끝난 뒤 김 씨는 나 의원에게 “유나 손잡고 꼭 콘서트를 보러 오시라. 유나에게 작은 행복을 주고 싶다”며 웃었다. 나 의원은 “우리 딸이 액션은 끝내준다. 꼭 가겠다”고 화답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To. 우현 아빠 공연 때 꼭 만나자
우현아, 이렇게 이름을 부르니 참 좋다.
우현이를 떠올리면 우리 딸 유나가 자연스럽게 그려져. 그래서 무슨 생각을 하는 지 궁금하고, 어떤 표정을 지을지 더 알고 싶구나.
사실 우현이 얘기를 들은 건 오늘이 처음인데 오래 전에 알았던 것처럼 편한 느낌이네. 내 아들처럼 챙겨주고,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도 그래서 생기나 봐.
네 얘기를 하는 아빠 표정을 본 적이 있니? 누구보다 얼굴도 예쁘고 마음까지 예쁜 아이라고 자랑하시는데 정말 행복해 보였거든. 얼마 전 암 판정을 받고 눈앞이 캄캄했을 때도 네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고 하시더라.
평생 했던 음악에 대한 아쉬움도 없고, 다른 미련도 없었는데 네 얼굴만큼은 더욱 또렷이 그려졌다고…. 너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그렇게 자신을 붙잡았고, 또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됐다고 말씀하시는데 가슴이 뭉클했어. 우현이는 좋겠다. 이렇게 든든한 아빠가 있어서.
게임하는 걸 좋아한다고 했지? 음악도 좋아한다던데. 아줌마는 사실 게임도 할 줄 모르고, 음악도 잘 몰라. 우현이 만나면 무식하다고 야단맞지 않을까 걱정이네.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해줄 수 있어. 너같이 예쁜 아이들이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밑그림을 그려주겠다는 것.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 오늘처럼 마음이 따뜻해진 순간이. 우현이가 유나랑 악기 연주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니 벌써부터 흐뭇하다. 아빠가 곧 공연 하신다는 거 알고 있니? 아줌마는 유나랑 같이 보러 갈 생각이야. 그때 널 볼 수 있으면 좋겠다. 한 손엔 유나 손, 한 손엔 네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을래?
From. 나경원 아줌마 To. 유나 내가 드럼 가르쳐 줄게
유나야,
아름다워서 고마워. 아름다워서 고마워. 아름다워서 고마워.
왜 똑같은 말을 세 번이나 하냐고? ‘아름답다’는 말이 유나랑 가장 잘 어울리거든.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네 사진을 보고, 또 얘기를 전해 들으니 유리처럼 맑고 아름답게 자라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드네.
사실 아저씨는…. 아니다. 삼촌이라는 말이 더 좋겠네. 삼촌은 아들 우현이를 보면서 많이 배우고 있단다. 처음엔 ‘왜 이 아이는 남들과 다를까’란 생각에 실망을 많이 했어. 답답하고, 한편으론 또 미안하고. 가장 당당해야 할 아빠가 가장 약한 모습을 보였지.
지금은 달라. 남들보다 약간 느리지만 조금씩 마음이 자라는 아이를 보며 행복을 느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거든. 힘든 일이 닥쳐도 우리 네 식구가 똘똘 뭉칠 수 있는 방법을 배운 것도 우현이 덕분이고. 유나도 그런 의미에서, 나 의원님 댁에 도착한 ‘선물’일 거란 생각을 하니 괜히 마음이 따뜻해진다.
삼촌은 유나가 ‘사랑한다’는 말을 빨리 배웠으면 좋겠어. ‘사랑’이란 단어가 얼마나 위대한지 알고 있니? 삼촌은 우현이를 보면서, 가족의 고마움을 느끼면서, 또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지 알게 됐단다. 유나가 부모님, 남동생, 또 미래의 남자친구에게 행복한 표정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드럼 치는 걸 좋아한다고 했지? 그럼 삼촌에게 먼저 왔어야지. 유나는 성격도 활발하고, 무엇보다 음악을 사랑한다고 하니 드러머로 키워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6월에 삼촌 공연이 있어. 사랑을 주제로 한 공연인데 유나가 꼭 와줬으면 좋겠다. 제일 아름다운 모습으로 앉아서 응원해줄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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