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공포에 갇힌 현실… 비상구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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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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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프랭크 푸레디 지음·박형신 박형진 옮김/
368쪽·1만9000원·이학사

현대인들이 갖는 공포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가뭄이나 홍수, 핵 등 실제 위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위험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즉 ‘상상된 공포’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동아일보DB
현대인들이 갖는 공포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가뭄이나 홍수, 핵 등 실제 위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위험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즉 ‘상상된 공포’에서 공포를 느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동아일보DB
동일본 대지진 이후 방사능 누출사고에서부터 광우병 파동, 조류인플루엔자, 신종플루, 구제역, 연쇄살인사건…. 이것들 중에서 나 자신과 동떨어진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매스미디어가 전달하는 사건·사고 프로그램, 건강과 환경 다큐멘터리, 스릴러 영화 등의 위험하고 잔혹한 장면들은 어떤가. 이것들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이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공포와 위험에 민감한 우리는 실재하는 것보다 허구에 더 불안해하고 두려움에 떤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 곧 일상의 모습일 것이다. 이처럼 오늘날 공포는 저자 푸레디의 말대로 ‘삶 자체’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공포를 매개로 사회적 삶을 재인식하는 문화적 관점을 갖게 되었다. 바로 ‘공포문화’이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공포가 발생하는 사회적 메커니즘과 그것이 현실세계, 특히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있는지를 사례를 들어 흥미롭게 전개해 나간다. 우리가 첨단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과거에 비해 실제로는 더 안전한 사회에 살고 있지만 왜 더 공포에 휩싸이고 위험에 민감한지 저자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다. 책에 따르면 과학은 공포에 대한 인식을 감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욱 증폭시킨다. 자연에서 오는 공포를 해소해준 과학기술이 오히려 공포감을 가중시킨다니 무슨 말인가. 과학은 공포의 제거를 목적으로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공포를 ‘발견’하기도 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공포문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곳에 있다. 푸레디는 공포문화의 원인을 인간들 간 ‘신뢰의 상실 혹은 부재’에서 찾는다. 인간이 행하는 파괴활동, 예를 들어 생태계 파괴, 불량음식 제조, 살인, 폭행 등은 정치가는 물론이고 시민단체, 매스미디어의 단골 주제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러한 문제들은 모두 인간으로부터 발생하고 더욱이 일상적이라는 점에서 인간에 대한 불신을 더욱 강화한다. 이로써 세상에서 제일 믿지 못할 ‘유독한 존재’는 바로 인간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경험하는 공포는 서로에 대한 믿음을 상실한 우리 자신으로부터 발생한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위험관리 능력은 증가할지 모르지만 불신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면 공포는 끝없이 가중될 뿐이다. 이것이 우리를 공포문화 속에 가두는 메커니즘이다.

정수남 고려대 강사 사회학 박사
정수남 고려대 강사 사회학 박사
저자에 따르면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공포는 인간의 통제 밖에 있는 자연이나 우리가 만들어낸 위험(핵, 유전자변형 등)도 아닌 위험 ‘가능성’에서 비롯된다. 이는 과학으로도 예측 불가능한 위험이며, ‘상상된 공포’이다. 상상된 공포는 원인과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더욱 심화시킨다. 이는 사람들을 서로 멀리하게 만든다. 부모는 자녀에게 “항상 조심하라”라고 줄곧 충고하는데 주의의 대상은 선생, 이웃, 심지어 가족구성원으로까지 점점 확대된다. 이로써 이타주의적 행동은 범죄의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친밀한 관계는 적대적인 관계로 전환된다.

이러한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사람들은 전문가 시스템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저자는 전문가에게 의존할수록 안심과 확신보다는 공포를 더 경험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역설적이게도 전문가는 위험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끊임없이 제공함으로써 사람들이 공포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생산한다. 오늘날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위험관리기관, 예를 들어 컨설팅업체, 전문상담기관 등은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푸레디는 공동체의 붕괴, 노동시장의 유연화 그리고 국가의 책임 축소에서 발생하는 공포의 개인화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에티켓’을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고립된 개인들의 경험에 기초한 도덕으로서 ‘신중, 자제, 책임 있는 행동’을 의미한다. 그리고 타인의 위험을 외면하고 책임 회피를 당연시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문화는 인간을 탐구와 실험정신 그리고 도전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며, 사회 참여에 수동적이고 정치에 무관심하도록 이끈다.

저자는 이런 공포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이 객체가 아닌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변화를 운명에 맡기기보다는 위험에 맞서며, 공포에 대한 자기성찰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위험과 공포를 완전히 벗어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이것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관건이다. 저자가 강조하듯이 사람은 ‘해답’이지 ‘문제’가 아니다. 공포문화의 근원이 불신에 있듯이, 공포문화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가장 먼저 요구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과 공감을 통해 공포문화로부터 ‘함께’ 벗어나길 저자는 희망한다.

이처럼 이 책은 풍부한 일상적 사례들을 제시하면서 학문적 난해함을 벗어던지고 익숙한 어법으로 우리에게 공포문화를 이해시킨다. 일반 독자는 물론이고 전문가, 정치인 그리고 사회운동가가 한국사회에서 떠도는 공포라는 유령을 포착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다음의 질문에 대해 더 고민해야 한다. ‘우리에게 왜 연대란 불가피한 것인가’를.

정수남 고려대 강사 사회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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