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형의 천장 아래 은은한 촛불이 실내를 비춘다. 연인들의 속삭임만 귓가를 간질인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일 산토 베비토레 레스토랑.
언제나처럼 홀로 테이블을 지키고 있다. 이 로맨틱한 분위기에 혼자라니. 파스타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추천해준 대로. 그런데 조금 후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내 주먹보다 더 큰 왕만두였다.
반짝이는 접시 가운데에는 예쁜 잎사귀 하나도 올라있었지만 메인은 만두 하나. 나처럼 혼자인 영락없이 외로운 왕만두다. 토르텔로. 이탈리아에서 먹는 속을 채운 파스타로 한국 만두랑 닮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사이즈다.
피렌체 일 산토 베비토레의 토르텔로. 김보연씨 제공 괜히 머쓱했지만 꿋꿋이 나이프와 포크로 만두를 자르니 계란 노른자가 흘러나온다. 조금 잘라 포크에 담아 입안에 넣으니 노른자와 리코타 치즈, 파스타가 어우러져 고소하고 녹진하다.
너무 맛있다. 이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혼자 큰 왕만두를 순식간에 먹어버렸다. 터져 흘러나온 소스도 빵으로 싹싹 닦아내며 말끔히도 먹었다.
시간이 흘러 이번엔 로마. 이탈리아 중부 마르케 지방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트라토리아 몬티라는 숨은 맛집에서 이 왕만두를 다시 만났다.
로마의 트라토리아 몬티 내부 전경. 김보연씨 제공 입구부터 한없이 로맨틱한 분위기. 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잘생긴 웨이터는 어찌나 사근사근한지 내 마음도 살랑인다. 마르케 출신 가족이 함께 경영하는 이 레스토랑은 어머니가 요리를 하고 아들 둘이 서빙을 한다. 여자 혼자라고 더욱 신경을 써주는 것 같다. 저 잘생긴 청년이 촉촉한 눈을 깜빡이며 인기 메뉴라고 추천하는데 마다하기 힘들었다. 이번에도 왕만두는 정말 맛있었다. 다시 싹싹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돌이켜보니 외로운 이야기. 하지만 이탈리아에서 저녁에 혼자 먹은 왕만두 맛을 잊을 수 없다. 피렌체와 로마에 가신다면 꼭 이 두 곳을 들러야 한다. 혹시라도 혼자라면 말리고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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