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역사의 거울]민족 vs 국민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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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주민과 다문화 이웃… 어느 쪽이 더 친근한가요

1908년 7월 8일 대한매일신보는 ‘민족과 국민의 구별’이란 논설을 실었다.

“국민이라는 명사는 민족 두 글자와 구별이 있거늘 그것을 모르는 자들이 왕왕 이 두 용어를 혼칭하니 이는 불가한 일이라.…민족이란 것은 단지 동일한 혈통에 속하며, 동일한 토지에 거주하며, 동일한 역사를 가지며, 동일한 종교를 받들며, 동일한 언어를 사용하면 동일한 민족이라 가히 칭하는 바이거니와 국민 두 글자는 이처럼 해석하면 불가할지라. 대저 혈통, 역사, 거주, 종교, 언어의 동일함이 국민 되는 요소가 아님은 아니나 단지 이것만이 동일하다고 꼭 국민이라 말함은 불가능하나니…민족을 가리켜 국민이라 칭함이 어떻게 가능하리요.

국민이란 것은 그 혈통, 역사, 거주, 종교, 언어의 동일한 것밖에 또한 필연적으로 동일한 정신을 가지며, 동일한 이해(利害)를 느끼며, 동일한 행동을 하여 그 내부의 조직이 한 몸의 골격과 흡사하며, 그 대외(對外)의 정신이 한 병영의 군대와 흡사해야 이를 국민이라 말하나니. 오호라 고대에는 국민 자격이 없는 민족이라도 가히 한구석에서 기반을 두어 토지를 경작하며 자손을 기르며…생활을 했거니와 금일에 이르러서는 만일 국민 자격이 없는 민족이면 대지 위에 눌러앉을 땅이 없을지라.”

일제에 강제로 병합당하기 2년 전에 나온 글이다. 논설은 미국 인디언이나 호주 원주민은 처음에는 번창한 민족이었지만 국민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20세기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시대를 만나 쇠퇴했다고 주장했다. 우리 민족 또한 약육강식의 제국주의 시대에 국민의 자격을 상실함으로써 같은 운명에 처했다.

일제는 조선인들을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국민화’했다. 일제하에서 국민이 황국신민의 약자를 의미할 때, 조선인들은 민족을 정체성 코드로 인식했다. 자주독립 국가를 세울 수 있는 종족적 토대로서 민족을 대안으로 내세운 것이다. 광복 후에도 분단국가의 불완전함을 민족통일로 극복하는 것을 역사적 사명으로 삼는 민족주의에 의해 한국인의 정체성은 국민이 아닌 민족으로 규정됐다.

오늘날 남한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면서 매우 이질적인 사회를 이루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의 첨단에 있는 남한사회와 제2의 물결로도 진입하지 못한 북한사회가 인위적으로 통일한다면 양쪽 모두에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사건 이후 남한 주민이 북한을 보는 시각은 많이 변했다. 민족통일보다 국가안보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민족과 국민의 구별’을 새롭게 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했다. 북한 주민은 같은 민족이지만 다른 국민이다. 이에 비해 우리 사회의 다문화가정 자녀들은 다른 민족이지만 같은 국민이다. 만약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누가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는 군인이 되는가?

3월 1일 현재 군복무 중인 다문화가정 출신은 145명뿐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2013년까지 징병검사를 받을 다문화가정 출신 남자(16∼18세)는 4000여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국방부는 장교 임관선서와 병사 입대선서에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의 ‘민족’ 대신에 ‘국민’을 넣기로 한다고 발표했다. 다문화가정 자녀들이 군에 입대하는 현실을 반영하기 위한 조치다.

시대에 따라 민족과 국민의 구별이 달라지는 게 역사다. 진화의 과정 속에서 살아남는 종(種)은 가장 강한 종이 아니라 가장 변화를 잘하는 종이라고 한다. 역사도 마찬가지다. 세계화시대 다문화사회라는 새로운 환경의 도전에 잘 응전하는 국가가 번영하고 그 국민이 잘산다.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 nowtime21@kg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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