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과 흥이 넘치지만 조용한 아침의 나라라니. “뭔가 이상하잖아요. 도대체 어쩌다 이런 모순적인 표현이 붙은 건지 연구해 봐야겠다고 생각했죠.” 한성대 예술대 지상현 교수(사진)의 말이다.
지 교수의 신간 ‘한국인의 마음’(사회평론)은 전통미술작품을 통해 한국인의 기저 심리를 살핀 책이다. 스스로 ‘미술심리학자’라고 부르는 저자의 8번째 저서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문화가 신명, 흥이 넘치는 ‘조(躁)’와 조용하고 순응하는 ‘울(鬱)’이 함께 있는 ‘조울증(manic)의 문화’라고 분석했다.
사람도 즐거울 때가 있고 슬플 때가 있는데 미술품이라고 그렇지 않을까. 어느 하나로 규정짓기 어려워 ‘회색론’을 택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지 교수가 웃으며 답했다. “크게 두 가지를 검증했어요. 임상심리연구자들을 만나 한국인의 정서 감정을 부탁했고, 일본과 중국 등 다른 나라 전통미술작품들과 비교분석을 시도했습니다.”
지 교수는 이 책에 소개한 작품 가운데 몇 가지 사례를 들었다. “한중일 세 나라의 ‘흉물’을 비교하면 우리 ‘조’ 문화의 특징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의 귀물(鬼物)은 무섭고 역겨운 느낌이 들죠. 중국 사천왕상도 무서운 느낌이 강하고요. 그와 달리 용주사(경기 화성시) 사천왕상은 웃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뭉툭한 입술과 파마처럼 머리 옆으로 말린 기운이 해학적이기까지 하죠. 한편 신윤복의 그림은 ‘울’을 보여줍니다.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볼 수 있을 법한 강박적인 기하학적 구성과 곡선이 그것입니다.”
지 교수가 말하는 조적 특징은 화려함과 동적임, 해학과 능동성이다. 반대로 울적 특징은 절제, 압축, 섬세함과 규칙성이다. 다른 나라 어디 미술품을 봐도 두 상반된 양식이 수시로 혼재하는 곳이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이런 조울증 감성을 현대미술의 특징과도 같은 것으로 평가한다. “현대미술은 안정보다는 불안, 작위보다는 우연, 기하학적 단순함과 기능주의, 감성을 드러내는 표현주의 등이 특징입니다. 한국 미술의 조울증 감성과 일맥상통하죠.”
지 교수에 따르면 이런 감성은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고 사용한 민예품 속에서 잘 드러난다. 도쿄 민예관이 소장한 높이 12cm의 석제 약탕관은 현대 미니멀리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없다. 같은 곳에 소장된 3단함은 현대미술의 특징인 작위(반듯한 함의 형태)와 비작위(표면의 흐트러진 붓질)의 대비를 드러낸다. 지 교수는 “이런 평범한 것들에서 현대성이 엿보인다는 것은 한국문화 전반에 현대성이 내재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홍익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미술을, 연세대에서 심리학 박사과정을 졸업한 지 교수는 앞으로도 “어떻게 아름다움을 느끼며, 어떤 미술이 어떤 감흥을 불러일으키는가”를 꾸준히 연구할 계획이다. “관념 수준의 미를 현실로 끌어와 과학적으로 이해하는 작업을 계속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좋아한 미술과 인간 연구를 동시에 하고 있는 저는 참 행복한 사람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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