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은 이 바둑을 지면서 22년 만에 무관(無冠)이 됐다. 입단 3년 만인 1989년 KBS 바둑왕전에서 우승해 세계 최연소(만 13세)로 타이틀 보유자가 된 이래 처음으로 타이틀이 없다. 이제는 모든 것이 ‘전(前)’이 됐다.
1986년 만 11세 1개월 때 초단이 되면서 냉엄한 승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그는 줄곧 달리기만 했다. 25년 동안이다. 그가 달려온 이력을 살펴보자. 1990년 한 해 41연승으로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을 낸다. 그해 승률도 86.7%(78승 12패)로 역대 최고. 만 17세인 1992년 동양증권배에서 우승해 최연소 세계 챔피언에 오른다. 1993년에는 90승을 거둬 통산 최다승을 기록했고, 1994년에는 국내 16개 기전을 모두 차지하는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했다. 그해 13개 기전에서 우승해 한 해 기준으로 통산 최다 타이틀을 따냈다. 2001년 통산 100회 우승을 이뤄냈고, 이후에도 매년 우승 횟수를 늘려간다. 비록 해가 갈수록 줄어들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딴 타이틀만 140개. 스승 조훈현 9단의 158개에 이은 대기록이다. 또 세계대회에서만도 23회나 우승해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올해 초 10번이나 우승한 국수위를 마지막으로 내놓으면서 그는 바둑을 배울 때처럼 빈손이다. 처음 마주하는 어색한 상황이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은 지금 어쩌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편안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가정을 꾸린 그가 인생에서나 바둑에서나 보다 성숙해져 돌아오기를 바둑 팬들은 기대한다.
결승 4국은 초반에 흑 37이 이상했다. 흑진을 지키려는 수였으나, 손을 빼고 좌상귀 큰 곳을 걸쳐갔어야 했다. 이후 흑은 좌상변을 깨기 위해 77을 뒀다가 마음을 돌려 79로 보강했는데 그 수가 결정적 패착이 됐다. 백 불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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