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는 없다. 객석만 있다. 영국 작가 팀 크라우치의 희곡을 번역한 연극 ‘디 오써(The Author·김동현 연출)’의 독특함이다.
객석을 무대 위로 올린 연극은 많다. 배우와 관객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 또는 배우와 관객의 위치를 역전시키는 효과를 낳기 위해. 2009년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공연한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립극단의 연극 ‘라 카뇨트’가 그랬고 2010년 장 주네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극단 뮈토스의 ‘유형지’와 극단 창파의 ‘검둥이들’도 그러했다. ‘디 오써’가 개막한 날 LG아트센터에서 개막한 극단 죽도록달린다의 ‘더 코러스; 오이디푸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들 작품에선 어떤 식으로든 객석과 구별되는 무대가 존재했다. 무대 위에 객석을 마주 세우더라도 그 사이 좁은 통로에서 연기를 펼치거나(‘라 카뇨트’) 하다못해 텅 빈 객석을 무대공간으로 활용했다(‘유형지’, ‘검둥이들’).
반면 ‘디 오써’에선 오로지 마주보는 객석만 존재한다. 4명의 배우는 관객들 사이에 섞여 앉은 채 대사와 연기를 펼친다. 관객(김주완) 남자배우(김영필) 여자배우(전미도) 작가(서상원)로 연극의 3대 요소(희곡 배우 관객)를 대변하는 존재들이다. 객석과 혼연 일체된 무대까지 감안하면 이 작품은 연극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으로 극을 전개한다.
배우들은 주변 관객에게 말을 걸고, 관객의 반응에 화답하며 극을 끌고 간다. 객석이 곧 무대고 무대가 곧 객석이 되는 셈이다. 관객은 혼란에 빠진다. 어둠 속에서 숨죽이며 연극을 지켜봐야 할 관객이 환한 무대조명 아래 연극의 일부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우들은 자신들의 실명을 쓰면서 자신들이 출연했던 실제 공연이나 실생활에 얽힌 속내를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뿐 아니라 배우와 관객의 경계, 연극과 현실의 경계까지 모호해진다. ‘경계인’을 주제로 한 두산아트센터 기획연작의 첫 작품답다.
4명의 배우는 최근 자신들이 관련됐던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서서히 털어놓는다. 필설로 형용하기 어려울 정도로 끔찍한 폭력과 섹스를 다뤄 논란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문제작이다. 작가는 그토록 끔찍한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 토로한다. 배우들은 사실적 연기를 펼치기 위해 토악질을 참으면서 무수한 사진과 동영상을 봐야 했다고 증언한다. 그리고 이를 지켜본 관객은 공연이 끝나기도 전에 그 충격을 못 이겨 실신했지만 ‘훌륭한 작품임에 틀림없다’고 말한다.
그들은 모두 예술과 현실을 최대한 근접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대인들이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가 그들의 창이라면 ‘연극은 연극일 뿐, 현실과 혼동하지 맙시다’는 그들의 방패다.
하지만 연극을 포함한 모든 극예술은 ‘현실의 거울’에 그치지만 않는다. 또 다른 현실의 모방을 낳는 악순환의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우물 속 깊은 어둠을 응시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우물 속으로 빨려드는 것이 인간이다.
연극은 바로 그렇게 깊은 어둠을 응시한 연극이 어떻게 자신들의 영혼을 파괴하는지를 불길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특히 그 최대 희생자는 관객이나 배우가 아니라 작가(디 오써) 자신이란 고해성사는 폭력과 섹스에 중독된 극예술에 오염된 관객의 영혼을 씻겨주는 정화작용까지 일으킨다.
이 작품은 그렇게 형식뿐 아니라 내용에 있어서도 연극에 대한 연극이다. 더 나아가 연극과 현실의 상호관계를 성찰하는 연극이란 점에서 ‘메타연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없앤 이 작품의 진정한 의도가 드러난다. 예술과 현실의 경계를 지우려 하면 할수록 무대로부터 안전한 객석 따위는 존재할 수 없게 된다. 예술가들이여, 예술의 가면 뒤에 숨어 음습한 욕망을 충족시키는 짓을 이제 멈추라.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19세 이상 관람가. 3만 원.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 02-708-5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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