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동의 2011 서울연극제 공식 참가작 ‘샘플 054씨 외 3인’(강량원 작·연출)은 ‘본다’는 행위가 얼마나 불완전하고 허점투성이인지 파고든다. 더 나아가 왜곡된 시각의 파괴성도 경고한다.
극의 형식부터 ‘보는 행위’를 부각한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상황이 실은 어느 연구 프로젝트 발표회장에서 영사기로 투사하는, 촬영된 영상 속 상황이라는 설정이 그렇다. 관객은 처음엔 상황을 ‘직접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누군가의 눈을 통해 본 것을 다시 보고 있는 것임을 알게 된다. 이를 통해 ‘본다’는 행위를 더 선명하게 인식한다.
네 명의 재소자가 출소한다. 이들은 법무부 산하 연구기관이 비밀리에 진행한 연구 표본이다. 각자의 수인번호를 따 샘플 054(최태용), 121(이길), 307(김진복), 199(김석주)로 지칭되는 이들은 고등학교 중퇴 이하의 학력을 지닌 형사범 가운데 엄선된 이들이다.
연극은 이들에 대한 3가지 시선을 교차해 보여준다. 첫째는 사회적 소외계층으로 좌절과 절망 끝에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재소자들의 슬픈 사연을 응시하는 시선이다. 둘째는 전과자라는 딱지가 붙은 그들을 두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하는 주변 사람들의 곤혹스러운 시선이다. 셋째는 그들을 이미 사회 부적응자로 사전에 결론 내린 연구원들의 왜곡된 시선이다.
왜곡된 시각은 잔혹한 결과를 낳는다. 출소 이후 이발소에 이발하러 간 이들이 전과자임을 알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발소 직원들에 의해 샘플 121은 부상한다. 높은 곳에 올라 새처럼 날갯짓을 반복하며 자유를 만끽하던 샘플 054는 그를 새로 잘못 본 포수의 총에 맞아 숨진다.
그런 왜곡된 시선의 포로가 되느니 그 시선 너머로 탈출하는 게 낫다. 아내에게 문전박대를 당한 샘플 199와 갈 곳 없는 샘플 307은 자살한 것으로 위장하고 연구원들의 감시망을 벗어난다.
실험적 번역극과 번안극에 주력해 왔던 극단 동이 소외계층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창작극을 발표한 점이 반갑다. 실험적 무대연출도 참신했다. 분할된 장면을 이어 붙여 극적 흐름의 연속성을 획득함으로써 영화의 몽타주 기법을 연극에 접목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정보를 쏟아내는 바람에 극의 흐름을 따라가기 버겁게 느껴진 점은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i:올해 32회를 맞은 서울연극제는 이 작품을 포함해 공식참가작 8편과 자유참가작 9편 등 모두 31편의 공연을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과 대학로예술극장 등에서 선보인다. 02-765-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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