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가 낳은 20세기 초현실 회화의 거장 조르조 데 키리코의 저택. 지금은 주교황청 한국대사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로마=오명철 문화전문기자 oscar@donga.com
한국 대사관이 키리코의 저택을 매입하면서 함께 구입한 키리코의 판화. 대사관 접견실에 전시되어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식이 열려 전 세계 순례객이 로마로 몰려든 가운데 주교황청 한국대사의 관저가 20세기 이탈리아 초현실주의 회화 거장 조르조 데 키리코(사진)의 저택이었던 사실이 알려졌다.
로마 외곽 고급 주택가인 미수리나 거리에 자리 잡은 대사관저는 대사관과 한 울타리에 있는 대지 3350m², 연건평 623m²의 지하 1층, 지상 3층 석조건물. 키리코의 예술혼이 단번에 느껴지는 담백하면서도 고상한 모습이다. 내부는 고급 대리석으로 치장돼 있다.
1888년 그리스에서 태어난 키리코는 아테네와 뮌헨 등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1911년부터 파리에 체류하면서 큐비즘의 영향을 받았으나 곧 고대의 건물이 긴 그림자를 드리운 광장이나 마네킹, 비스킷 등의 정물을 신비적으로 그리는 ‘형이상 회화’ 양식을 완성해 나갔다. 1917년 파리에서 카를로 카라와 더불어 ‘형이상 회화파’를 제창했다. 그러나 1919년부터 그때까지의 작품을 부정하고 라파엘, 루벤스 등의 작품을 모사(模寫)하기 시작했다. 이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자 자기의 옛 작품을 모방하면서 은둔하다 1978년 90세로 사망했다.
한국 정부는 1974년 바티칸 상주공관을 개설하면서 그가 살던 집을 대사관 청사 및 관저로 임차했으며 1983년 5월 키리코의 부인으로부터 이 건물을 매입했다. 대사관 측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이 집은 1946년 건립됐고 키리코는 1952년 5월부터 이 건물에서 거주하면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했다. 대사관 측은 매입 당시 키리코의 부인으로부터 판화 1점을 매입해 접견실에 전시해 놓고 있다.
로마에서 유학시절을 보낸 한국외국어대 교수 출신의 한홍순 주교황청대사는 “이탈리아가 낳은 위대한 예술가의 저택을 관저로 사용하는 것은 큰 영광이어서 관리 보존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며 “교황청과 한국천주교회의 아름답고 소중한 인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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