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146>我故로 曰 告子未嘗知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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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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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浩然之氣(호연지기)를 양성하는 문제와 관련해서 集義(집의)를 매우 중시했다. 집의란 매 행동마다 義를 실천함으로써 義를 차츰차츰 축적하여 나가는 것을 말한다. 맹자는 한 가지 행동이 우연하게 義에 부합한다고 해서 곧바로 바깥으로부터 엄습하여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이어서 맹자는 자신의 설이 告子(고자)의 설과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하여 集義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未嘗은 ‘일찍이 …하지 않았다’로 풀이한다. 以는 이유를 나타내는 개사(介詞)이다. 外之는 그것, 즉 義를 바깥의 것으로 돌렸다는 말이다.

앞서 맹자는 告子가 ‘말에서 이해되지 못하거든 마음에 알려고 구하지 말고 마음에 편안함을 얻지 못하거든 기운에 도움을 구하지 말라고 했다’고 한 말을 인용하고, ‘마음에 편안함을 얻지 못하거든 기운에 도움을 구하지 말라’는 것은 가하거니와 ‘말에서 이해되지 못하거든 마음에 알려고 구하지 말라’는 것은 불가하다고 비판했다. ‘말에서 이해되지 못하거든 마음에서 알려고 구하지 말라’고 한 것은 곧 義를 바깥의 것으로 돌린 때문일 것이다.

‘맹자’의 ‘고자·상’ 편에서는 더욱 분명하게 고자의 설을 인용해서, ‘食(식)과 色(색)이 性(성)이니, 仁(인)은 내면에 있지 외면에 있는 것이 아니되, 義는 외면에 있지 내면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고자는 仁愛(인애)의 마음은 내면에서 생기므로 배우는 자들은 특히 仁에 힘을 쓰면 되지, 굳이 바깥의 것인 義에 힘쓸 필요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맹자는 매 행동에서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지 못함이 있으면 마음에 부족해서 호연지기가 몸에 충만하지 않게 된다고 하여 매 행동마다 반드시 의로운 일을 축적하여야 호연지기를 낼 수 있다고 보았다.

義의 대상이나 義의 행동은 바깥의 것일 수 있지만 義의 마음은 내 내면에 들어 있는 실천이성과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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