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浩然之氣(호연지기)를 기를 때는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며, 억지로 助長(조장)하기를 송나라 사람 하듯이 하지 말라고 했다. 송나라 사람이 하듯이 한다는 것은 벼의 싹이 빨리 자라나기를 기대해서 벼의 싹을 조금 들어 뽑아놓는 알苗助長(알묘조장)을 행하는 일을 말한다.
不助苗長者寡矣는 벼의 싹을 뽑아서 무리하게 조장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적다라는 말로, 결국 조장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 된다. 이중부정의 구문과 같다. 以爲無益은 호연지기의 양성을 무익하다고 여긴다는 뜻이다. 以爲∼는 ‘∼라고 여긴다’는 뜻의 판단문을 이룬다. 舍之는 호연지기의 양성을 버려둔다는 말로, 舍는 버릴 捨(사)와 같다. 耘苗는 벼의 싹이 자라도록 주위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이다. 非徒無益而又害之의 주어는 알苗者(알묘자)인데, 바로 앞에 나왔으므로 생략됐다. 非徒∼而又∼는 그저 ∼일뿐만 아니라 도리어 ∼하기까지 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맹자는 행동할 때마다 義(의)를 실천함으로써 義를 차츰차츰 축적해 나가는 集義(집의)를 통해서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맹자의 관점에서 보면, 告子(고자)처럼 義를 축적하지 않고서 억지로 마음을 제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正助(정조·미리 기대하거나 억지로 조장함)하는 병통을 면하지 못할 것이기에, 호연기지를 잘 기를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치게 될 것이다. 자율적 인간이라면 호연지기를 길러 나의 주체가 전 우주와 일체가 되는 가슴 벅찬 충만감을 경험해야 하리라. 하지만 조급하게 굴지 말자. 호연지기는 무리하게 助長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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