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유명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앨런 베닛의 신작 ‘외설(Smut)’이 영국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양성애자로 알려진 그는 예전 그의 성적 취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질문은 사하라 사막을 기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페리에를 줄까요, 말번(둘 다 생수 브랜드)을 줄까요’라고 묻는 거나 다름없습니다”라는 재치 있는 대답으로 경탄을 안겼을 만큼 뛰어난 영국식 유머를 구사한다. 그의 대표작이자 각종 상을 안겨준 극본 ‘역사 소년들(History Boys)’은 남자 고교에서 벌어지는 선생들과 학생들 사이의 동성애를 다뤄 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베닛 특유의 풍자와 날카로운 유머가 가득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신작 ‘외설’은 두 개의 단편을 묶은 책이다. 작가 자신이 양성애자로서 사회의 편견에 맞서 살아왔기 때문일까. 두 단편 모두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고자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번째 작품인 ‘도널드슨 부인의 회춘’은 전형적인 중산층 중년부인인 도널드슨 부인의 이야기.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그는 남편이 갑자기 사망한 뒤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인근 병원의 의대생들을 하숙생으로 받으며 낮에는 그들의 실습을 위해 꾀병 연기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난한 의대생들은 하숙비 대신 그들의 성관계를 도널드슨 부인에게 보여주겠다는 괴상한 제안을 하게 되고, 그때부터 도널드슨 부인의 두 가지 삶이 시작된다. 낮에는 연기자로, 밤에는 관음을 즐기는 자로….
두 번째 단편인 ‘포브스 부인의 비밀’ 또한 비상식적인 성적 관계를 다루고 있다. 포브스 부인에게는 얼굴은 잘생겼지만 머리는 텅 빈 아들이 하나 있다. 이 아들에게는 비밀이 있는데 바로 동성애자라는 것이다. 그러나 보수적인 어머니 포브스 부인을 거부하지 못한 아들은 얼굴은 예쁘지 않지만 자신보다 훨씬 더 똑똑한 여성과 결혼을 한다. 그리고 겉으로는 화목한 중산층 가족인 척하지만 그 이면에선 평범하지 않은 일이 벌어진다. 포브스 부인의 남편은 아내의 구박에 시달리다 온라인 채팅으로 여자들을 만나고, 동성애자 아들은 어쩌다 보니 경찰을 협박한 죄로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러자 똑똑한 며느리는 이 집안의 문제들을 해결하고 실권을 장악하리라 결심한다.
이처럼 베닛이 해학적으로 묘사하는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욕망이 사회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며 ‘사회에 적응한 자’로 보이기 위해 애써 본래 모습을 감추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그 해학은 이들을 비웃는 차가운 시선이 결코 아니다. 한 독자가 평했듯이 베닛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등장인물을 만드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작가다.
결국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자신의 비밀을 숨기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등장인물들을 조소하기보다는 이들을 이렇게 만든 답답한 사회에 대해 불만을 갖고 등장인물들을 응원하게 된다. 지난달 7일 영국에서 출간된 이 단편집은 해학적 유머와 통렬한 풍자를 사랑하는 영국인들에게 큰 사랑을 받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됐다. 가디언의 사이먼 해튼스톤 기자가 ‘아름답고 추잡하다’고 칭한 이 작품은 과연 예술인가, 아니면 외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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