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주제 다른 다른 이야기 ‘3국 3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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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9일 03시 00분


한중일 소설가 12명이 ‘도시-性’ 소재로 쓴 단편집 ‘젊은 도시…’ 출간

《한국과 중국 일본 소설가들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어떤 글쓰기를 할까. 자음과모음 출판사가 최근 출간한 소설집 ‘젊은 도시, 오래된 성’을 보면 한중일 작가들의 같고도 다른 생각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소설집은 한국의 ‘자음과모음’, 일본 ‘신초(新潮)’, 중국 ‘샤오숴제(小說界)’ 등 한중일 계간지가 지난해 여름호와 겨울호에 동시 연재했던 한중일 소설가 12명의 단편 12편을 묶은 것. 매회 한중일 소설가 2명씩 6명이 주제에 따라 소설을 쓰고 이를 세 나라의 계간지에 서로 번역해 수록했다. 지난해 여름호 주제는 ‘도시’, 겨울호 주제는 ‘성(性)’이었다.》

한국에서 소설가 이승우, 김애란, 김연수, 정이현 씨가, 중국에선 쑤퉁, 위샤오웨이, 거수이핑, 쉬이과 씨가, 일본은 시마다 마사히코, 시바사키 도모카, 고노 다에코, 오카다 도시키 씨가 참여했다. 이를 묶은 단행본이 한국에서 먼저 나왔고 일본 중국에서도 출간을 앞두고 있다.

한중일 소설가들의 다른 생각은 첫 번째 주제 ‘도시’에서 두드러졌다. 문학평론가 손정수 씨는 “중국은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고 반면 일본은 고독과 죽음의 정서가 짙게 깔렸다. 한국은 중일의 희망과 비극의 정서가 혼재돼 나타나는 중간 모습이 엿보였다”고 말했다.

쑤퉁 씨의 단편 ‘샹차오칭’에선 의사와 여자 약제사의 부적절한 관계가 그려지는 과정에서 인물들의 감정과 열정의 에너지가 넘치고, 위샤오웨이 씨의 ‘날씨 참 좋다’에서도 절도와 마약거래 혐의로 출소한 전과자가 다시 위기에 봉착하는 얘기가 그려지지만 역설적으로 인물들은 희망과 온정을 버리지 않는다. 반면 일본 시마다 마사히코 씨의 ‘사도 도쿄’, 시바사키 도모카 씨의 ‘하르툼에 나는 없다’에서의 인물들은 시종일관 조용하고 무기력하고 불안하다. 한국 이승우 씨의 ‘칼’과 김애란 씨의 ‘물속 골리앗’의 경우, 자연재해 등에 맞선 나약한 인간 군상을 그리는 것은 일본의 ‘불안’ 정서와 일맥상통하지만 그 결말에서 새로운 희망을 놓지 않는 것은 중국의 정서와 맞닿아 있다.

개인적인 주제인 ‘성’에서는 한중일 소설가들의 자유로운 글쓰기 실험이 펼쳐졌다. 중국 거수이핑 씨는 ‘달빛은 누구 머리맡의 등잔인가’에서 독일 하이델베르크를 배경으로 독일에 사는 아들과 중국에 머물고 있는 부모의 갈등을 그렸다. 일본 오카다 도시키 씨는 ‘붉은 비단’에서 오빠의 친구와 결혼한 여성에 대한 탁월한 심리 묘사를 내세웠다. 한국 김연수 씨의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서는 열정을 갖고 있는 ‘이모’와 그를 잃어버린 ‘나’의 대비를 통해 현대인들의 모습을 잔잔히 그렸다.

문학평론가 정여울 씨는 “중국 현대문학이 참신한 주제와 섬세한 글쓰기로 많이 현대화한 점을 볼 수 있었고 일본은 순수문학에 집중하는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고 평했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한 소설가들은 교류에 큰 의미를 뒀다. 김연수 씨는 “2000년대 이래 한중일 작가들의 교류가 늘어 이제는 작가들끼리 얼굴을 아는 정도가 됐다. 이번 문예지를 보고 일본 작가들이 많이 연락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번역을 전제로 글을 집필하다 보니 인간 내면을 고찰하는 글보다는 이야기에 치중하는 소설을 쓰게 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중국의 쑤퉁 씨는 지난해 말 열린 ‘한중일 문학 심포지엄’에서 이번 교류에 대해 “제 삶 속에는 분명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는 순간들이 있고, 제 세계는 분명 다른 사람의 세계를 보완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한중일 소설가들의 동시 연재는 계속된다. 각국 문예지의 올 여름호에는 한국의 박민규, 조현 씨, 중국의 예미, 쉬저천 씨, 일본의 에쿠니 가오리, 마치다 고 씨의 신작 단편이 나란히 실린다. 세 번째 연재 주제는 ‘여행’이다. 황여정 자음과모음 편집장은 “올해 하반기에 한중일 시인들이 3박 4일간 한국에 모여 교류하는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각국 작가들이 상대 국가에 가서 체류하며 집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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