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연의 맛있는 유럽]<3>이탈리아 모데나 ‘에르메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5월 20일 03시 00분


구수한 ‘콩죽’… 1시간반 기다리길 잘했네

이탈리아 모데나의 ‘에르메스’ 레스토랑에서 에르메스 아저씨(위 사진 가운데)가 손님들과 활짝 웃고 있다.오른쪽은 ‘파스타 에 파졸리’. 김보연 씨 제공
이탈리아 모데나의 ‘에르메스’ 레스토랑에서 에르메스 아저씨(위 사진 가운데)가 손님들과 활짝 웃고 있다.오른쪽은 ‘파스타 에 파졸리’. 김보연 씨 제공
밥 한 끼를 위해 한 시간을 기다리라니. 더구나 칼바람 부는 영하의 날씨에.

이탈리아 모데나의 레스토랑 ‘에르메스’를 찾아갈 때가 그랬다. 기차역을 나와 적막한 골목길 모퉁이의 조그마한 식당이었다. 정오쯤인데 이미 자리는 찼는지 가죽점퍼의 이탈리아 멋쟁이들이 잔뜩 줄 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집고 들어가니 만화주인공 ‘뽀로로’를 닮은 아저씨가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쳐다보지도 않기에 쫓아가서 외쳤다.

“저, 혼자 왔다고요!”

아저씨는 동그란 안경 위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이탈리아 말로 무어라 중얼댔다. 그러다 귀찮다는 듯 종이에 뭔가를 적어준다.

‘1.15’. 1시 15분에 오라는 뜻이었다.

‘뭐, 한 시간 넘게 기다리라고? 그래, 얼마나 맛있나 한번 보자’라는 오기가 생겼다.

1시 반에야 겨우 입장했다. 쌀쌀맞던 ‘뽀로로’ 아저씨는 그제야 친절해졌다. 이 시골까지 와서 밥 한 끼 먹자고 홀로 기다린 까만 눈의 여자가 측은했을까. 이탈리아 남자들이 빽빽이 모여 있는 테이블로 안내해준다.

‘전석 합석 시스템’이다! 빈자리 없이 커다란 테이블에 오는 이마다 끼어 앉는다. 메뉴판도 없이 아저씨가 외치는 두 메뉴 중에서 골라야 한다. 나처럼 오랫동안 기다리던 ‘동지’들이 아저씨 말에 깝죽거리더니 결국 꿀밤을 맞는다. 그러고도 좋다고 웃어댄다. 이 아저씨는 그들에게 학교 앞 밥집 ‘이모’쯤 되나 보다.

추위에 지친 나는 ‘파스타 콩수프’를 주문했다. 정확한 이름은 ‘파스타 에 파졸리’. ‘파스타와 콩’이라는 뜻의 강낭콩과 파스타가 들어간 이탈리아식 콩죽이다. 한 시간의 고생을 녹여줄 만큼 구수하고 진하다. 이어 나온 밀라노식 치킨가스인 ‘코토레타 밀라네즈’는 엄마표 돈가스처럼 친숙했다.

제대로 된 재료로 정성 들여 만드는 맛이다. 이 레스토랑은 새벽에 장 봐온 신선한 재료로 요리를 하고 재료가 떨어지면 바로 문을 닫는다. 오후 3시면 문 닫을 때가 많다.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에야 아저씨 이름이 가게 이름과 같은 ‘에르메스’인 것을 알게 됐다. 에르메스 아저씨의 식당은 푸짐하고 정직했다. 이곳을 가득 채운 이탈리아 멋쟁이들은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김보연 푸드칼럼니스트 ‘유럽맛보기’ 저자, pvir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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