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39>평양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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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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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독특한, 차갑게 식힌 국수


우리가 냉면을 먹듯이 국수를 일부러 차갑게 만들어 먹는 나라는 드물다. 일본에도 메밀국수인 냉(冷)소바가 있지만 우리 냉면처럼 차갑지는 않고 중국의 량몐(凉麵)은 찬 것이 아니라 뜨겁지 않을 뿐이다.

냉면은 이렇게 세계적으로 독특한 음식이고 한국인 대부분이 좋아하는 전통 국수지만 유래를 알고 보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른 부분이 적지 않다.

먼저 우리 고유의 음식이니까 먼 옛날부터 조상들이 먹었을 것 같지만 냉면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다. 또 더운 여름에 시원하게 먹어야 제 맛이라고 생각하지만 본래는 겨울철 음식으로 발달했다. 지금은 평양과 함흥을 대표적인 냉면의 고장으로 꼽지만 예전에는 해주와 진주도 냉면으로 유명했다.

냉면의 기원을 찾기는 쉽지 않다. 먼저 차가운 국수라는 뜻의 냉면(冷麵)이 문헌에 나오는 시기는 조선 중엽이다. 17세기 초, 인조 때 활동한 장유의 계곡집(谿谷集)에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보인다.

자줏빛 육수의 냉면이라는 시에서 냉면을 먹으며 독특한 맛(異味)이라고 표현했다. 시 한 편을 놓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독특하다는 표현과 냉면이라는 단어가 처음 보이는 것을 보면 조선 중기에는 냉면이 그렇게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그전에도 차가운 국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냉도(冷淘)라는 음식이 보이는데 고려 말 이색은 냉도를 먹으니 시원하다는 시를 읊었고 이긍익은 연려실기술에 고려 환관들이 유두절이면 더위를 피해 머리를 감고 수단(水團)을 먹으며 냉도와 비슷한 맛이라고 했다는 기록을 남겼다.

냉도는 중국에서 먹는 찬 밀가루국수다. 고려 환관들이 수단과 비슷한 맛이라고 한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먹었다는 냉도는 차가운 밀국수나 수단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의 문헌에 냉면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18세기 이후부터다. 다산 정약용은 면발이 긴 냉면에다 김치인 숭저(숭菹)를 곁들여 먹는다고 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실학자 유득공은 서경잡절(西京雜絶)에서 가을이면 평양의 냉면 값이 오른다고 적었다.

평양냉면은 조선 중기 이후 널리 보급되면서 바로 유명해진 모양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은 평양의 명물로 감홍로와 냉면, 그리고 비빔밥을 꼽았는데 감홍로는 계피와 생강을 꿀에 버무려 소주를 붓고 밀봉해 담그는 술이다. 40도가 넘는 독주로 평양에서 담근 것이 유명했다.

평양에서는 고기안주에 감홍로를 마신 후 취하면 냉면을 먹으며 속을 풀었다고 해서 선주후면(先酒後麵)이라는 말이 생겼다. 지금도 술자리가 끝날 때 마지막으로 국수를 먹는 경우가 있는데 평양에서 냉면이 해장국 역할을 한 풍속에서 비롯된 것이다.

동국세시기에도 겨울철 계절음식으로는 메밀국수에 무와 배추김치를 넣고 돼지고기를 얹은 냉면을 먹는다고 소개했는데 그중에서도 관서(關西)지방의 국수가 제일 맛있다고 했으니 바로 평양냉면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평양냉면은 메밀을 주원료로 하지만 쫄깃한 맛을 더하기 위해 녹말가루를 섞어 반죽을 한다. 그렇지만 메밀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질기지 않고 잘 끊어진다. 이 때문에 비빔냉면으로는 적합하지 않다고 한다. 평양냉면이 물냉면의 형태로 발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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