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위기라는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인의 자존심에 큰 상처를 줬다. ‘일본은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사회’라는 안전신화가 대지진으로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특히 대지진의 피해가 노인이나 장애인 등 이른바 사회적 약자에게 집중됐다는 점에서 일본의 취약한 사회적 연대를 반성하는 목소리로 이어지고 있다. 가족, 공동체, 사회적 인연(絆) 등 그동안 백안시해왔던 공동체적 가치관을 회복하자는 TV 광고와 캠페인이 줄을 잇는 것도 이 같은 위기감의 반영이다.
후지모리 가쓰히코(藤森克彦) 미즈호 정보종합연구소 연구위원이 쓴 ‘단신(單身) 급증 사회의 충격’(니혼게이자이신문출판사)은 일본 사회의 ‘무연고성’이 가져올 미래를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출판됐지만 오히려 대지진 이후 각종 매스컴에 소개되며 화제의 책으로 주목받고 있다. 일본의 미래를 인구학적 관점에서 저출산 고령화로 풀어낸 책은 셀 수 없이 많다. 하지만 이 책은 혼자 사는 단신가족 세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기존 접근과 차별화한다.
저자가 그리는 일본의 미래는 우울하다. 앞으로 20년 후 일본 도심은 가족 없이 혼자 사는 홀몸노인으로 가득 찰 것이며 빈곤, 고립, 열악한 복지가 사회문제화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부모와 동거하는 40대 이상의 미혼자인 이른바 ‘단신세대 예비군’은 202만 명에 이른다. 특히 단신 예비군은 남성이 여성의 2배에 달해 2030년경에는 50대 남성 4명 중 1명은 홀몸노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왜 미혼자가 늘어나는 것일까. 저자는 우선 여성이 결혼을 하지 않고도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사회를 한 요인으로 꼽는다. 결혼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인생을 선택하는 여성이 늘면서 독신가구가 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경제적 빈곤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이 계속되면서 비정규직 사원이 급증한 결과 저임금화와 고용불안을 낳았고 사회의 재생산의 기초세포인 가족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1억 명의 중산층을 자랑하던 안정 고용신화는 깨진 지 오래고 지금은 일하는 사람 3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이다.
저자는 대안으로 정부의 개입을 주문한다. 최저 임금의 수준을 높이고 실직자의 직업능력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노동시장에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일본 사회보장정책의 틀을 근본부터 손질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일본의 사회보장체제는 결혼과 가족의 도움을 전제로 짜인 시스템이어서 단신세대가 급증하는 미래에는 더는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값싼 임금과 고효율을 우선시하는 글로벌리즘이 강제한 고용시장 불안을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대안 제시는 어정쩡하다. 저자는 “단신세대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혼자 사는 사람도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사회를 구축하는 것이 가족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현재 가족이 있는 당신도 언제 단신세대가 될지 모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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