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말한다. 야구는 확률의 게임이라고. 그래서인가. 야구는 지금 내가 딛고 선 삶의 터전과도 닮았다. 이대호가 아니라 이대호 할아버지가 무사 만루에 나와도 서너 번 중에 한 번은 파울플라이나 삼진을 당할 수 있고 8이닝 무실점으로 역투하던 류현진도 끝내기 홈런 한 방에 패전투수가 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마음대로 되는 부분보다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그래서 사람들은 야구와 인생이 닮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상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 최근 프로축구 승부조작과 관련한 언론인터뷰에서 “수많은 경우의 수가 있는 야구에서 선수 한두 명을 매수해서 승부를 한쪽으로 기울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라고 일축한 데서도 그 ‘경우의 수’의 무거움이 느껴진다.
○ 겸손함 일깨우는 ‘멘털 게임’
사실 10, 20대는 스타플레이어나 선호하는 팀의 승패에 연연한다. 그러나 직업전선에 본격적으로 발을 담그고 있는 30대 이상 샐러리맨, 그리고 가장들은 좀 더 입체적인 관전 포인트를 갖고 있다.
필자는 프로야구 선수를 보면서 증권사 투자 담당 부서의 영업맨을 떠올린다. 프로 선수들의 상당수는 엄청난 연습량에도 불구하고 주전에서 제외되고 모처럼 맞은 무사 1, 2루 찬스에서 병살타를 치는 일이 허다하다. 기업체를 돌아다니며 아무리 열심히 영업을 해도 계약을 성사시키지 못하는 증권사 영업담당도 같은 처지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운’ 앞에 맞설 수 없다는 진리는 인생, 삶, 좁혀서 말하면 직장생활의 순간순간과 너무나도 닮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초대 대회에서 4강 위업을 달성한 김인식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김경문 당시 국가대표 감독을 일컬어 “지장(智將)이고 덕장(德將)이고 다 소용없고 운짱이 최고”라고 말한 사실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나친 논리의 비약인지는 모르나 이 때문인지 야구 혹은 야구 중계를 좋아하는 내 주변의 30, 40대들 중에는 드라마보다 다큐멘터리를 더 좋아하는 습성도 보인다. 가공된 스토리라인에서 감동을 느끼기보다는 야생의 우연성 속에서 느끼는 일체감과 동병상련(同病相憐)에 더 많은 점수를 주기 때문이리라. 병살타 치는 프로야구 선수의 플레이 하나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다 보면 어느 드라마 한 장면보다 더 많은 감정의 정화를 체험하게 된다.
2루타를 단타로 막거나, 다이빙 캐치 하나로 분위기를 반전시킨 뒤 다음 이닝에서 대거 역전을 시키는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야구를 ‘멘털의 게임’이라고도 한다. 기량이 뛰어난 운동선수들을 학창시절에 접해본 사람들은 이들이 대체로 당구나 도박에도 강하다는 사실이 떠오를 것이다.
‘잃을 때는 조금씩, 딸 때 왕창 따는’ SK 와이번스 선수들처럼 기본이 돼있는 야구를 하는 이들은 증권회사 직원 입장에서 보자면 대단히 현명한 투자자이고, 반대편에서 보면 얄미운 투자자이기도 하다.
상승장에서 흥분해서 이 종목 저 종목 질러대다 결국 ‘털리는’ 투자자들, 높은 값에 샀다가 매도 기회를 놓치고 줄하한가 치는 종목을 보면서 망연자실하는 투자자들도 있다. 반면 하락장세에서도 요령 있는 손절매를 통해 손실을 크게 줄이는 사람도 있다. 모두 야구처럼 ‘멘털’의 문제로 귀결되는 대목이다.
○ 증권 투자와 닮아
양준혁이 은퇴 후에도 ‘양신’으로 추앙받는 이유는 뛰어난 성적을 거뒀을 뿐 아니라 아웃이 될 걸 뻔히 알면서도 전력질주했기 때문이다. 동아일보DB증권계에서는 한번 ‘맛’을 본 투자자가 계속 투자를 잘한다는 말을 한다. 자신감이 생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추신수가 2할9푼 몇 리를 치다가 결국 1년 통산으로는 3할대를 이룬 적이 있었는데, 이 역시 “3할을 쳐 본 사람이 3할을 또 치게 된다”는 야구 격언과 일맥상통한다. “우승을 해본 자만이 우승을 할 줄 안다”는 격언도 따지고 보면 멘털의 선순환 고리(어려운 상황-자신감-즐김으로써 극복)에서 파생된 것이리라.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의 흥행코드는 ‘진정성’이다. 혼을 실어 노래하는 가수와 가수지망생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감동을 받는 것이다. 야구의 흥행코드 역시 진정성이다.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그림 같은 슬로 화면을 내놓는 요즘의 프로야구 중계 덕분에 표정을 통해 ‘진정성 있는 플레이’를 구별해 내는 게 그다지 어렵지 않다. 단지 스트라이크 판정을 놓고 심판에게 투정을 부리는 선수에게서 진지함을 느끼기는 쉽지 않지만, 3-2로 뒤진 9회말 1사 2루에서 어떻든 선행주자를 진루시키려 방망이를 움켜잡고 강속구를 최소한 스치듯 맞혀서 파울을 만들어내고, 그러다 인코스 볼이 오면 오히려 다리를 들이밀며 몸에 맞으려는 이들을 보면 간절함마저 느껴진다.
경우의 수와 운과 확률을 그나마 어느 정도 제어할 수 있는 변수는 이 진정성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또 불공정, 불평등해 보이는 우리 사회, 직장에서도 어느 정도 보상이 돌아온다는 위안이 생긴다. 솔직히 매일 밤낮없이 일하는 사람들 중에 좋지 않은 고과를 받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다시 증권사 기업금융인들을 생각해 봐도 마찬가지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영업이라도 마르고 닳도록 자료를 만들어 주고 신발이 닳도록 고객사를 다니며 노력한다면 언젠가 해당 기업에서 자금조달을 할 때 대표주관사 선정이라는 달디단 열매는 그 사람 몫일 것이다.
신간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에는 필자가 앞서 풀어놓은 키워드들이 대부분 등장한다. 여자주인공이자 도쿄 호도쿠보 고등학교의 야구단 매니저로 일하는 미나미가 우연히 피터 드러커의 경영학 고전 ‘매니지먼트’를 읽고 훌륭한 매니저로 탈바꿈해 결국 만년 꼴찌 학교에 고시엔 대회 우승을 안긴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을 관통하는 제일 큰 명제는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진지함(진정성)”이다.
단타를 치고 1루를 향해 전력 질주를 한 진정성의 사나이 양준혁은 은퇴 후에도 팬들에게 ‘양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렇듯이 비록 승진에 실패하고 임원 명단에서 빠지더라도 가족에게, 친지들에게 ‘열심히 살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존경받을 수 있는 이 땅의 회사원들이야말로 진정한 국가대표 ‘스타플레이어’다.
조인직 대우증권 IPO부 차장 cij1999@naver.com
■ 독자 여러분에게 야구 소설을 드립니다
여러분은 야구와 얽힌 어떤 사연이 있으신가요? 동아일보 O2는 ‘야구와 인생’을 주제로 동아닷컴(www.donga.com)에서 이 기사에 댓글을 써주시는 독자 20분께 신간서적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을 드립니다. QR코드를 찍으셔도 응모할 수 있습니다. 이벤트 마감은 12일 24시 입니다.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댓글 20
추천 많은 댓글
2011-06-13 18:41:51
온라인 댓글이벤트 마감되었습니다. 당첨자께는 개별 통보 해드립니다
2011-06-05 21:07:55
레너드 코페드가 쓴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야구란 던지고 휘두르고 달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에 커다란 어른들이 목숨을 걸고 겨루는 단순한 스포츠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숨은 인생의 진가와묘미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로축구 승부조작 때문에 스포츠계가 흉흉한 이 시점에 새삼스레 양준혁 선수가 더욱 위대해 보이는 건, 아마도 운동 선수로서의 '기본'을 가장 잘 실천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11-06-05 20:01:20
실적 좋은 양준혁이 주루플레이도 열심히 하니 시너지 효과가 나서 더 위대해 보이는거고, 실적 안좋은 넘은 아무리 입에 게거품 물고 달려도 짤리기 마련인 것.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일에 시간 투자를 올인해야 인생을 열심히 살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으나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대로 작은 부자 정도는 되는 거고 그게 아니면 고생만 직싸게 하다 흐지부지하고 마는게 아닐지. 적성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할 듯.
좀 더 하고 싶은 이야기 많아 장종훈 선수와 관련하여 블로그에 글 올렸습니다.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blog.naver.com/pyokorea/140131560652
2011-06-10 03:00:55
지금부터 20여년전 1990년도에 어떤 국민학생 아이는 고졸 연습생 출신 야구선수가 홈런왕을 차지하는 것을 보게됩니다 나이가 어려서 야구룰도 잘 몰랐었고 그저 TV에서 홈런이 나오면 기쁘면서 박수치는 단순한 아이였기때문에그저 그렇게 홈런을 때려주는 아저씨가 좋았습니다. [더위사냥]이라는 아이스크림을 선전했던 그 야구선수의 이름은 장종훈이었고 그 아이는 2010년에 30살이 된 저입니다. 그리고 전국에는 저와 같은 또래인 수많은 국민학생 아이들이 이제 다들 아저씨를 처음 좋아했던 때의 아저씨 나이보다 더 나이많은 30대 아저씨들이 되었습니다. 저에게 꿈이란 것이 무엇인지,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청춘이 어떤 것인지, 처음 가르쳐준 장종훈 아저씨에게 고마워하며!
2011-06-06 14:12:02
재능보다 중요한건 진지함이라.. 어려서부터 야구 좋아하는 아버지 밑에서 야구를 보며 자라왔고, 지금은 직장인이 되어 이제 출근한지 열흘이 조금 넘은 신입사원으로서.. 또 피터드러커 혹은 그 말고도 톰 피터스 등 많은 경영학 구루들의 글을 읽으며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저 말이 무엇보다 와닿습니다. 야구장 가본지도 오래됐는데,, 조만간 야구장이나 함 가봐야겠습니다ㅎ
2011-06-06 09:12:03
인생을 살아가는데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며 산다. 야구도 어느회 어느 경우가 될련지 모르게 진행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이에 임하는 자들의 진실성과 성실성에 따라 그 결과는 크게 달라 질 수 있다. 그 진실성과 설실성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것은 아니다. 언제나 꾸준히 노력 하는 자 만의 것이라는 것이다 찬스에 강하는것. 위기를 모면하는것 이 모든것이 말이다.
2011-06-05 23:41:07
동아일보는 언론인가 이단재판소인가 당신들의 신분을 찾아가시고 거짓보도로 정신적 피해를 본 150만 성도들 앞에 사죄하시죠
2011-06-05 23:38:40
동아일보의 거짓보도로 우리가정은 엄청난 정신적피해를 보고있습니다 거짓보도로 가정을 파괴시키는 가정파괴범 그러고도 사과한번없고 나잘났다하는 동아일보 양심없는 언론이란 말인가!!!!!!!!
2011-06-05 21:16:07
롯데야구에 일희일비 하는 골수 롯데팬입니다. 진짜 주식이나 인생처럼 알수 없는게 야구죠.. 9:8 9회초 2아웃에 아웃하나면 경기끝인데..거기서 홈런을 맞고 역전당하는게 롯데야구고..LG한테 8승3패로 밀리고 sk한테 3승2패로 이기는 롯데도 있고, 저처럼 실수 한번에 잘다니던 회사를 옮기게 되는 경우도 있고, 절대 알 수 없는거 같네요. 특히 경기 수가 많다보니 절대 요행수가 없고. 아무리 몇번의 연승을 하더라도 결국 실력에 의해 순위가 결정되는게 야구 같네요..여고생 여자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알고서 바뀌는거 처럼 저도 바뀌는 기회가 생기기를...
2011-06-05 21:07:55
레너드 코페드가 쓴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야구란 던지고 휘두르고 달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에 커다란 어른들이 목숨을 걸고 겨루는 단순한 스포츠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숨은 인생의 진가와묘미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로축구 승부조작 때문에 스포츠계가 흉흉한 이 시점에 새삼스레 양준혁 선수가 더욱 위대해 보이는 건, 아마도 운동 선수로서의 '기본'을 가장 잘 실천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11-06-05 21:05:13
이제 보니 야구는 정말로 우리의 삶과 닮았군요.아직 나이는 많지 않지만 앞으로는 야구를 보면서 경기뿐만 아니라 삶을 배워나가도록 해보겠습니다.ㅋ ㅋㅋㅋ
댓글 20
추천 많은 댓글
2011-06-13 18:41:51
온라인 댓글이벤트 마감되었습니다. 당첨자께는 개별 통보 해드립니다
2011-06-05 21:07:55
레너드 코페드가 쓴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야구란 던지고 휘두르고 달리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행위에 커다란 어른들이 목숨을 걸고 겨루는 단순한 스포츠다. 그러나 그 단순함 속에 숨은 인생의 진가와묘미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프로축구 승부조작 때문에 스포츠계가 흉흉한 이 시점에 새삼스레 양준혁 선수가 더욱 위대해 보이는 건, 아마도 운동 선수로서의 '기본'을 가장 잘 실천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11-06-05 20:01:20
실적 좋은 양준혁이 주루플레이도 열심히 하니 시너지 효과가 나서 더 위대해 보이는거고, 실적 안좋은 넘은 아무리 입에 게거품 물고 달려도 짤리기 마련인 것. 자신의 소질과 적성에 맞는 일에 시간 투자를 올인해야 인생을 열심히 살면 작은 부자는 될 수 있으나 큰 부자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대로 작은 부자 정도는 되는 거고 그게 아니면 고생만 직싸게 하다 흐지부지하고 마는게 아닐지. 적성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