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44>매실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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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7일 03시 00분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최고의 청량음료

시원한 청량음료를 찾는 계절이 돌아왔다. 입맛이 국제화된 탓인지 요즘 여름이면 어른은 아이스커피, 아이는 탄산음료를 주로 찾는다. 하지만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는 단오 이후에 마시던 우리의 전통음료는 매실차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임금이 궁중 약국인 내의원에 명령해 제호탕을 만든 후 신하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동국세시기에는 단옷날 내의원에서 약초가루를 꿀에 넣어 끓인 제호탕을 만들어 임금께 바친다고 했다. 최남선도 조선상식문답에서 여름이 시작되면 제호탕, 새해 정월에는 수정과를 마신다고 기록했다.

이름도 낯선 제호탕은 시원한 매실음료다. 지금으로 치면 최고급 아이스 매실차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얼마나 좋은 음료였는지 제호탕 한 사발 얻어 마신 사람들은 벼슬의 높고 낮음을 떠나 모두 감격했다.

국조보감(國朝寶鑑)에는 여름이 되자 정조가 제호탕과 환약을 하사하며 “수고한 것을 생각해 특별히 제호탕을 내려 더위를 씻게 하려는 것이니 여러 사람과 나누어 먹으라”고 하자 대신들이 감격하며 받는 장면이 보인다.

사신으로 조선에 왔던 일본인들도 제호탕을 마시고는 그 맛을 평생 잊지 못했던 모양이다. 효종 때 통신사로 일본에 간 남용익이 마중 나온 일본 관리에게 제호탕을 선물하니 “13년 만에 조선의 별미를 다시 맛보게 되었다”며 좋아했다고 남용익이 쓴 부상일록(扶桑日錄)에 적혀 있다.

알기 쉽게 시원한 아이스 매실차라고 했지만 제호탕은 오매, 사인, 백단, 초과를 빻아 곱게 가루로 만들어 꿀에 재워 끓였다가 냉수에 타서 마시는 청량음료다.

산림경제에 제조법이 나오는데 오매 1근을 빻아 물에 졸인 후 맑게 가라앉히고 사인 반근과 꿀 다섯 근을 사기그릇에 함께 넣어 붉은빛이 생길 때까지 졸이는데 식으면 백단과 사향을 넣는다고 했다.

오매(烏梅)는 덜 익은 푸른 매실을 따서 씨를 제거한 후 과육을 연기에 훈제해 건조시켜 만든다. 사인(砂仁)은 생강과 비슷하게 생긴 한약재이며 백단(白檀)은 우리나라에서는 나지 않는 한약재로 주로 인도에서 수입하는 고급 약재다. 초과(草果) 역시 생강과의 열매로 우리나라에는 없는 수입 약재이며 주로 차와 음식에 넣는 향신료다. 사향(麝香)은 사향노루의 음낭에서 채취하는 향수의 원료이다.

들어가는 재료를 보면 당시 가격도 엄청났을 뿐만 아니라 구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조선시대에는 왕이나 정승, 또는 엄청난 부자 아니면 마실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인공재료를 쓰지 않고 옛날 그대로 만든다면 요즘도 일반인이 마시기에는 쉽지 않은 초호화 음료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만든 제호탕을 여름에 마시면 더위를 식혀 주고 갈증을 해소하며 위와 장을 튼튼하게 해준다고 했다.

제호탕이라는 이름도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시원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인데 제호(醍호)는 깨닫는다는 뜻의 불교 용어다. 당나라 때 현장법사가 산스크리트어 만다(manda)를 한자로 번역한 단어로, 본질을 깨달으면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정신이 상쾌해진다는 뜻이다. 음료수 이름치고는 상당히 철학적인 데다 뜻은 더할 나위 없이 좋으니 이번 단오에는 옛 멋도 살릴 겸 아이스커피나 탄산음료 대신 제호탕과 비슷한 매실차라도 마시며 머리를 맑게 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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