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1200 객석 뒤덮은 ‘연극의 正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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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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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산불’
연기★★★☆ 연출★★★☆무대★★★☆ 음악★★★

문제1. 소극장 중극장 대극장의 차이는?

답=소극장은 300석 이하, 중극장은 500석 안팎, 대극장은 1000석 이상. 딩동!

문제2. 그럼 ‘대극장 공연’의 기준은?

답=1000석 이상에서 3주 이상 공연하거나 800석 이상에서 4주 이상 공연하는 것. 딩동!

멸종위기에 처했던 한국의 대극장 연극이 마침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5일 개막한 연극 ‘산불’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전체 객석 1500여 석 중 3층을 제외하고 2층까지 1200석에서 31일까지 4주 가까이 공연에 들어갔다.

‘산불’은 6일로 5주기를 맞은 고 차범석 씨의 대표작이다. 6·25전쟁 기간 낮에는 국방군, 밤에는 인민군이 지배하던 지리산 산골 과부마을에 숨어든 빨치산 탈영병을 놓고 두 과부 집안 2대가 펼치는 비극적 애욕의 드라마다.

연극 ‘산불’에서 6·25전쟁 중 남편이 실종되면서 생과 부로 살던 점례(서은경)가 남몰래 숨겨주며 사랑을 나누던 빨치산 규복(조민기)이 자수를 결심하자 이를 말리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연극 ‘산불’에서 6·25전쟁 중 남편이 실종되면서 생과 부로 살던 점례(서은경)가 남몰래 숨겨주며 사랑을 나누던 빨치산 규복(조민기)이 자수를 결심하자 이를 말리고 있다. 신시컴퍼니 제공
1962년 명동국립극장(현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된 이후 ‘한국 사실주의 연극의 최고봉’이란 수식어가 붙었다. 김수용 감독에 의해 영화화만 두 차례 됐고 뮤지컬(댄싱 섀도)과 창극, 오페라로도 제작됐다. 그러나 정작 연극으로 대극장 무대에 서는 것은 약 50년 만에 처음이다. 1973년 준공된 해오름극장에서 연극이 3주 이상 공연되는 일도 최초다.

이번 공연을 놓고 대극장 연극의 흥행 여부를 논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일 수 있다. 대숲이 통째로 불타는 마지막 장면을 위해 200여 그루의 대나무와 700대의 조명기구를 투입하며 8억여 원의 제작비를 쏟아 넣은 박명성 대표도 “적자는 당연지사”라고 말했다.

관심은 제2, 제3의 대극장 연극이 나올 만큼의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느냐다. 그것은 50년 된 이 현대적 고전을 어떻게 동시대적으로 풀어낼 것인가와 얼마나 스펙터클한 무대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산불’만 네 번째로 연출하는 임영웅 씨는 뚝심 있게 정공법을 택했다. 원작의 사실주의 정신에 충실하게 대숲에 둘러싸인 산골마을을 통째로 무대 위로 불러왔다. 이글거리는 화마(火魔)를 보여주는 영상 효과를 배격하고 객석까지 벌겋게 물들이는 조명과 연기 그리고 효과음만으로 인간 욕망을 삼켜버리는 스펙터클 효과를 그려냈다.

배우들 역시 과장이나 생략 없이 정석 연기로 압도적인 무대에 맞섰다. 강부자 조민기 장영남 등 대중적 지명도 높은 배우들은 개성적 화법과 연기로 이를 돌파했다. 권복순 서은경 이인철 이태린 등 연극계 간판배우들은 기본기에 충실한 연기로 이를 뒷받침했다. 원로연극인들은 육성이 아니라 마이크를 사용한 것을 아쉬워했다. 그러나 해오름극장은 다목적공연장으로 지어져 마이크 없이는 공연이 불가능하다. 2009년 공연된 국립극단의 ‘새 새’나 지난해 공연된 로버트 윌슨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도 그러했다.

유일한 변칙은 음악이었다. 피아노 반주에 재즈풍의 스캣 송을 공연 중간 라이브로 들려줬다. 동시대적 해석을 음악을 통해 표출해내려는 시도였지만 오히려 극의 흐름과 충돌한다는 느낌이 강했다.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란 말이 있다. 기본에 충실해야 길이 생긴다는 논어의 구절이다. ‘산불’은 분명 다양한 현대적 변주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첫 대극장 공연에서 ‘쉬운 파격’이 아니라 ‘어려운 정도(正道)’를 택한 제작진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1만∼7만 원. 02-763-1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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