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기물명(器物銘)을 찾아서]조선 선비의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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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1일 03시 00분


아버지가 남겨준 거울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새겨

○ 선비의 아침 풍경

조선시대 거울.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조선시대 거울. 국립민속박물관 제공
‘이빨을 마주치고 뒤통수를 퉁기며, 침을 잘게 씹어 진액을 삼킨다. 옷소매로 갓을 쓸어 티끌을 털어내며, 세수할 땐 주먹의 때를 비비지 말고, 양치질할 때는 냄새가 없게 한다.’ 박지원(朴趾源·1737∼1805)의 ‘양반전(兩班傳)’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도가(道家)의 수련법에 따라 아침을 여는 선비의 모습을 다소 희화적으로 묘사한 장면이다.

박지원의 벗이었던 이덕무(李德懋·1741∼1793) 또한 ‘사소절(士小節)’이란 책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남겼다. ‘군자가 거울을 보고서 의관을 정제하고 용모를 가다듬는 것은 요염한 자태를 꾸미자는 것이 아니다. 거울을 늘 손에 쥐고 눈썹과 수염을 매만지며 날마다 고운 자태를 일삼는 자가 있는데 이런 짓은 부녀의 행동이다.’ 수백 년 전에도 꽃미남을 바라는 남성들이 있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덕무는 더 나아가 ‘남이 보는 데서는 가려운 데를 긁지 말고, 이를 쑤시지도 말고, 벌거벗은 채 벼룩을 잡지 말고, 혹은 손톱에 벼룩 잡은 피를 씻지 않아 남이 추하게 여기게 해서는 안 된다’고 권하였다. 어쩔 수 없었던 당시 풍속의 이면이다.

○ 세면하고 거울을 보는 선비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나면 거울을 본다. 예나 이제나 이런 모습은 같지만, 조선시대에 거울은 그리 흔한 물건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화장품 갑, 화장실, 자동차, 쇼윈도, 그야말로 도처에 거울이 널려 있는 요즘 세상과는 딴판이었다.

그렇지만 거울을 소재로 한 문학으로 치자면 도리어 옛날이 오늘날보다 더 많게 느껴진다. 문학교과서에 실려 있는 이규보(李奎報·1168∼1241)의 산문 ‘거울에 대하여(鏡說)’는 이미 아는 분이 많을 텐데, 그가 거울에 관한 시를 지었던 사실까지 아는 분은 드물지 않을까 싶다. 앞에 예로 든 박지원도 ‘설날 아침에 거울을 마주 보며(元朝對鏡)’라는 시에서 이렇게 읊었다. “두어 올 수염이 문득 돋았으나, 여섯 자 몸은 전혀 크지 않았네. 거울 속 모습이 해마다 달라졌으나, 어릴 적 마음은 지난해 그대로이네(忽然添得數莖鬚 全不加長六尺軀 鏡裡容顔隨歲異 穉心猶自去年吾).” 해마다 모습은 달라졌으나 어릴 적의 순수한 마음은 그대로라는 뜻을 담았다. 몸은 늙어도 정은 늙지 않는다는 말과 비슷한 맥락이다.

○ 미수(眉) 허목(許穆)의 거울과 다짐

거울을 소재로 해 기물명(器物銘)을 남긴 명인은 셀 수 없이 많다. 사물을 있는 대로 비춰주는 정직함과 티끌이 끼지 않아야 바로 볼 수 있는 깨끗함은 거울이 본래부터 지닌 속성이요 본질이다. 고결한 마음을 소망하는 사람들이 거울을 자주 소재로 활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17세기의 명필이었던 미수 허목(1595∼1682)의 거울에는 남다른 사연이 깃들어 있다. 허목은 환갑이 넘어 정계에 나가 송시열과 일대 격론을 펼쳤던 인물로, 그야말로 굽히지 않는 소신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겨준 거울이 있었는데, 팔순이 다 되어가는 즈음에 이 거울에 다음과 같은 다짐을 새겨두었다.

밝고 밝은 것 오직 거울이라
이로써 용모를 가지런케 하고
이로써 몸을 반성할 수 있으리
皇皇唯鏡 可以整其容 可以省其躬

―거울에 대한 다짐(경명·鏡銘)

허목의 말을 따르자면, 이 유품은 돌아가신 아버지가 임진왜란 당시에 군량미를 대며 3년간 병사들을 뒷바라지하다가 얻은 것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80년이 흘렀다. 이제는 그 자신도 노인이 되어 거울을 보다가 감회를 정리하여 쓴 것이 이 작품이다. 이 무렵 그는 송시열, 송준길 등과 격렬하게 예송(禮訟) 논쟁을 펼치며 태풍의 눈으로 부상해 있었다. 파란의 한복판에서 고요히 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되새겨보는 마음이 꼿꼿하다. 그리고 훗날 그는 흔들림 없는 노년의 상징으로 강렬하게 기억되었다.

김동준 이화여대 국어국문학과 조교수 djk2146@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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