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매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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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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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 백매(白梅) 간송미술관 소장
단원 김홍도, 백매(白梅) 간송미술관 소장
퇴계 이황의 각별했던 매화 사랑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00수가 넘는 매화 시를 짓고 스스로 ‘참으로 매화를 아는 사람(眞知梅者)’이라는 칭호를 짓기도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62제 91수의 매화 시로 ‘매화시첩(梅花詩帖)’을 묶어 우리 문학사상 최초의 단일 소재 자작 친필 단행본 시집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술상 한가운데 매화분(梅花盆)을 올려두고 대작을 하기도 하고 매화 감상용 도자기 의자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말년에 병이 들어 몸져누운 뒤에는 “매형(梅兄)에게 누추한 모습을 보일 수 없다”며 매화를 의인화해 다른 방으로 옮기게 하고 숨이 넘어가기 직전에는 “매화분에 물을 주라”고 말해 유언이 되게 하였습니다.

퇴계의 매화 사랑에는 관기 두향(杜香)과의 애절한 사연이 깃들어 있습니다. 단양군수로 부임한 48세 때 두향의 나이는 방년 18세였습니다. 두향은 인물이 빼어났을 뿐만 아니라 시문(詩文)과 거문고에 능하고 화분에 매화를 기르는 분매(盆梅) 솜씨도 좋았습니다. 어느 날 두향이 고이 길러온 매화분을 퇴계의 처소로 옮겨 스스로 마음을 얻고자 하였습니다. 절개가 곧은 퇴계도 첫 부인에 이어 재취마저 사별하고 아들까지 잃은 처지라 설중매 같은 두향에게 빠져들지 않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운명처럼 서로에게 빠져든 두 사람은 매화가 만발하듯 꿈결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퇴계와 두향의 사랑은 단 10개월 만에 퇴계가 풍기군수로 발령을 받으면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퇴계가 떠난 뒤 두향은 신임 사또에게 청원하여 관기생활을 청산하고 평생 퇴계를 그리워하며 홀로 살았습니다. 지절(志節)을 지키고 오매불망 퇴계만을 그리워하며 여생을 보낸 것입니다. 퇴계가 6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 사람은 21년 동안 단 한 차례도 만난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두향에 대한 퇴계의 속 깊은 사랑은 단양에서 헤어질 때 그녀에게서 선물 받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긴 것만으로도 넉넉하게 드러납니다. 퇴계가 세상을 떠났다는 부고를 들은 두향은 단양에서 도산서원까지 나흘 동안 걸어가 문상하고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주검을 퇴계와 자주 거닐던 남한강 강선대 밑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매화는 눈 속에서 피어나 냉기 속에서 향기를 발하는 꽃입니다. 그래서 북송의 시인 소동파는 매화를 일컬어 추위를 넘어서는 기골이 있다 하여 ‘옥골빙혼(玉骨氷魂)’이라 표현하였습니다. 퇴계와 두향의 사랑에서 느껴지는 옥골빙혼의 절개, 매화에서 느껴지는 속기(俗氣) 없고 고상한 사랑의 기개가 하나로 승화되는 게 느껴집니다. 오늘날처럼 무절제하고 가벼운 사랑의 풍조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격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 두향과 헤어지고 4년째 되던 해 퇴계가 지어 두향에게 인편으로 보낸 한 편의 시에 절절하게 녹아 있습니다.

‘옛 성현의 오래된 책을 대하며/밝고 빈 방에 초연히 앉아/매화 핀 창가에 봄소식을 보게 되니/거문고 줄 끊어졌다 한탄하지 않으리(黃卷中間對聖賢 虛明一室坐超然 梅窓又見春消息 莫向瑤琴嘆絶絃).’

박상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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