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도돌이표 인생 악몽’ 한 여인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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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1일 03시 00분


◇환영/김이설 지음/200쪽·1만 원·자음과모음

독하다. 매우 질기기도 하다. 먹고살기 위해 정조와 도덕관념, 아니 인간의 자존감까지 버린 한 여자의 추락이 지긋지긋하게 사실적으로 그려진다.

대도시 인근 물가의 한 닭백숙 집. 집에서만 뒹구는 무능한 남편 대신 갓난아기를 먹여 살리기 위해 윤영은 종업원으로 나선다. 어떤 것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돈 1만 원을 찔러주며 슬쩍 몸을 만지는 남성 손님에게도 익숙해지고, 결국 별채에서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매매에도 발을 디디게 된다. 가게 밖에서 손님과 만나기도 한다.

가욋돈이 생겼지만 윤영의 생활은 나아지지 않는다. 친정 식구들은 툭하면 사고를 친 뒤 그녀에게 돈을 요구하고, 남편은 일을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입원하고, 아이는 걷지 못해 치료받아야 한다.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지만, 끊임없이 더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절망적인 상황의 연속이다.

인물들의 뚜렷한 개성이 흡인력을 높인다. 옆에 있으면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 답답한 남편과 자기만 아는 뻔뻔한 친정 식구를 보면 ‘왜 저렇게 살까’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젖이 돌아 가슴이 축축해져 윤영은 손님에게 망신을 당하고, 집에 들어가 젖을 물렸더니 너무 많이 나와 아이가 사레들렸다는 등의 세밀한 묘사도 탁월하다.

남편을 중환자실로 보내고 삶에 지친 윤영이 죽 한 그릇을 앞에 두고 한 생각은 절박한 그에게 연민의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게 만든다. ‘뜨거운 죽 한 그릇을 앞에 두니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로지 뜨거운 이걸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작품은 잠시 닭백숙 집을 떠났던 윤영이 다시 출근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도돌이표에 따라 악몽 같은 인생이 반복되는 것. 제목 ‘환영’은 윤영이 출근길에 놓인 시의 경계 표지석 ‘어서 오세요’에서 따왔다는 게 작가의 말. 끔찍한 세계로 오는 것을 환영한다는 섬뜩한 인사인 셈이다.

2006년 등단해 처절하고 위태로운 여성들의 삶을 주로 그려온 작가는 “핍진한 사람들이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는지 얘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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