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46>참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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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14일 03시 00분


우리나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토종 과일

참외는 우리 민족의 과일이다. 전통적으로 우리나라 여름을 대표하는 과일이기도 하지만 한국을 벗어나면 맛보기 힘든 토종 과일이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참외는 없고 이웃나라인 중국이나 일본에도 우리와 같은 종류의 참외는 없다. 외국시장에서 참외를 봤다면 십중팔구 한국인을 상대로 특별히 재배했거나 한국에서 수입한 것이다.

참외가 민족 과일이라는 것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는데 거짓이 아닌 참된 ‘외’이기 때문에 참외다. 국어사전을 보면 외는 오이의 준말이라고 나온다. 참외라는 이름을 한자로 풀어보면 우리 조상들이 참외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인식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

한자로 오이 과(瓜)자를 쓰는 과일이나 채소는 여럿 있다. 참외도 그중 하나인데 진짜라는 뜻에서 진과(眞瓜)라고 한다. 반면에 지금 우리가 오이라고 부르는 채소는 토종의 진짜 오이가 아니라 서역 오랑캐 땅에서 전해졌다는 뜻에서 호과(胡瓜)다. 또는 덜 익었을 때는 파랗지만 익으면 노래진다는 의미로 황과(黃瓜)라고도 한다.

호박은 남과(南瓜)다. 원산지가 남미로 남쪽에서 전해졌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다. 수박의 한자 이름은 서과(西瓜)다. 고려 때 전해졌는데 전래 경로가 오이와 비슷하지만 오이가 먼저 호과라는 이름을 차지했기 때문에 서과라는 이름을 얻었다.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과일이나 채소는 아니지만 수세미도 외의 일종인데 내용물이 실 같은 섬유질이어서 사과(絲瓜)라고 한다.

흔한 과일 하나를 놓고 민족 운운하니까 너무 거창한 것 같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참외는 우리에게 단순한 과일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나 상민 구분 없이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즐겨 먹었던 과일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보릿고개를 맞은 농민들에게는 가을철 벼가 익기 전까지 식량이 떨어지면 밥 대신에 먹는 양식이 되기도 했다.

여름이 되면서 참외가 쏟아져 나오면 서민들은 한시름 놓으며 값싼 참외로 주린 배를 채웠다고 한다. 1928년에 발행된 별건곤(別乾坤)이라는 잡지에 참외는 값싸고 배가 불러 양식으로 먹는다고 했고 1909년 어떤 일본인은 조선의 하층민은 참외로 배를 채운다며 신기하다는 기록을 남겼다.

조선시대 농민들은 여름이면 너나 할 것 없이 참외를 재배했다. 조선 중기 때 문인인 박동량은 기재잡기(寄齋雜記)에 세종 임금이 용인 여주 이천 등지로 사냥을 나서면 길가의 백성들이 청참외와 보리밥을 대접했는데 그러면 반드시 술과 음식으로 답례를 했다고 적었다. 성군인 세종대왕에게 농민들이 자신들이 먹던 음식이라도 대접하려고 했던 모습이 정겹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토종 과일인 만큼 예전 참외는 지금보다도 종류가 훨씬 다양했다. 별건곤이라는 잡지에 여러 종류가 보이는데 알록달록한 개구리참외, 겉이 노란 꾀꼬리참외, 색깔이 검은 먹통참외, 속이 빨간 감참외, 모양이 길쭉한 술통참외, 배꼽이 쑥 나온 배꼽참외, 유난히 둥그런 수박참외가 있다고 했다. 쥐똥참외라는 것도 있는데 야생종이라 맛이 없어 아이들이 장난감으로만 갖고 놀았다.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참외도 있고 어린 시절 맛보았던 추억의 참외도 있다. 과일가게에 진열된 참외가 부쩍 많아진 것을 보고 떠오른, 우리 과일에 대한 단상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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