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참 공평도 하시지. 원래 무용수였던 남자는 뮤지컬 주인공으로 변신해 노래를 부른단다. 아이돌 가수였던 여자는 무대 위에서 우아한 발레 공연을 펼친단다.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춤과 노래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신의 끼를 맘껏 펼치는 이들 ‘공연계 신인류’를 탐구해본다.》
무용계 풍운아가 ‘매력만점 건달’로… 이용우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주역으로 발탁된 이용우 씨는 “노래는 아직자신 없지만 몸의 연기로 한번 도전해 보겠다”며 한껏 도발적 포즈를 취해 보였다. 장승윤 기자tomato99@donga.com무용계의 풍운아 이용우 씨가 이번엔 뮤지컬 무대에 선다. 8월 2일∼9월 18일 LG아트센터에서 공연할 ‘아가씨와 건달들’이다. 그것도 구세군 여성 선교사 사라를 유혹하는 주인공 스카이 역으로 뮤지컬로 잔뼈가 굵은 김무열 씨와 나란히 발탁됐다.
2004년 CF 모델, 2006년 뮤직비디오, 2009년 드라마 ‘스타일’, 올해 3월 개봉한 영화 ‘마이 블랙 미니드레스’에 이어 뮤지컬까지. 이쯤 되면 연예인이란 칭호가 더 어울린다. CF 모델로 출연하면서 “현대무용의 대중화를 위해서”라고 했던 그의 말이나 2009년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한국 무용계에 부족한 표현력을 배우기 위해서”라고 했던 말이 무색해질 수밖에 없다.
“2008년 영국 무용단 ‘DV8’ 오디션 최종 면접에서 탈락할 때 제가 정말 흠모하던 안무가 로이드 뉴슨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네 춤에는 겉모습만 있을 뿐 내면이 담겨 있지 않다. 사랑하면 눈빛이 떨려야 하고, 화가 나면 실핏줄이 튀어나와야 하는데 너는 사랑하는 척, 화가 난 척만 하고 있다.’ 그 말을 듣고 제대로 연기를 배우자고 결심한 건데 막상 연기를 해보니 이게 몇 년 배운다고 될 게 아니더라고요.”
지난 2년간 드라마 두 편, 영화 한 편을 찍고 나서 올 초부터는 아예 정식으로 연기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그러다 뮤지컬 출연 제의까지 받게 된 것이다.
“평생 남 앞에서 제대로 된 노래를 한 적이 없어요. 뮤지컬도 발레리노를 다룬 ‘빌리 엘리어트’ 정도만 봤는걸요. 연기를 배우자고 결심하면서도 뮤지컬 배우는 정말 꿈에도 그려본 적 없어요.”
그래서 당시는 바로 사양했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뮤지컬 연출을 맡은 이진아 씨의 열정적 설득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노래 잘하는 뮤지컬 배우는 있어도 몸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이는 드물다. 사람들이 네게 원하는 것은 스카이의 매력을 몸의 리듬감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동아무용콩쿠르 금상을 수상하고 무용계 차세대 총아로 각광받던 그에게 이보다 더 매력적인 제안은 없었을 것이다. 그의 최종 목표가 몸으로 풀어내는 무대예술이라는 점에서도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것보다는 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연기에 입문한 뒤 무용할 때 습성이 자꾸 배어 나와 요즘은 아예 무용은 끊고 살다시피 했지만 제 궁극의 목표는 현대무용으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잖아요. 다양한 ‘보디랭귀지’로 톡 쏘는 맛이 있는 스카이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배우 주진모 씨와 닮았다. 방송국에서 주진모 씨 코디네이터들이 자신을 주진모로 잘못 알고 쫓아오는 해프닝도 빚어졌다고 한다. 외모뿐 아니라 목소리가 중저음인 점도 닮았다. 과연 그가 몸짱, 얼굴짱에 이어 노래짱까지 차지하게 될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19일 방영될 KBS 단막극 ‘남자가 운다’로 1년여 만에 시청자들을 만날 그는 12월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에서 전문 무용수가 아닌 일반인들을 무용수로 기용한 힙합댄스 공연으로 다시 무용팬들을 찾아간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 아이돌 가수서 ‘순백의 지젤’로… 스테파니 김 ▼
허리 부상 때문에 ‘천상지희’ 활동을 중단한 뒤 발레리나로 한국 무대에 돌아오는 스테파니 김 씨. 그는 “발레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했다. 국제공연예술프로젝트 제공“그냥 무작정 췄어요. 발레는 워낙 어릴 때부터 해 와서 그런지 오히려 재활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지금도 허리는 아프지만 그냥 밴드 붙이고 무대에 서요.”
여성 아이돌 그룹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멤버 스테파니 김(김보경·24) 씨의 전화기 너머 목소리가 쾌활했다. 2008년 말 허리 부상으로 가수 활동을 중단했던 그가 발레리나로 한국에 돌아온다. 29, 30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7월 2, 3, 5, 6일 울산, 포항, 울진, 영양에서 열리는 ‘2011 한국을 빛내는 해외 무용스타 초청공연’ 무대다. “집에 들어오면 그대로 쓰러지죠. 그래도 무대 위에서는 아픈 걸 다 잊어버려요. 춤이 너무 좋으니까….”
다섯 살 때 발레를 시작한 김 씨는 열다섯 나이에 만 16∼21세 무용수가 활동하는 보스턴발레단Ⅱ의 입단 제의를 받을 만큼 유망주였다. 비슷한 시기 SM엔터테인먼트에 스카우트되면서 가수의 길을 택했던 그에게 악몽이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5년 뒤 일본에서 천상지희가 정규 2집을 발표하고 일본 투어콘서트를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갑작스러운 부상이었다. “그룹 내에서도 댄스 퍼포먼스를 많이 하는 편이었어요. 높은 힐을 신고 춤을 추고….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는데 갑자기 허리가 너무 아파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결국 2집 활동과 일본 투어는 김 씨를 제외한 멤버 3명만으로 진행됐다. 김 씨는 2009년 초 가족이 있는 미국 샌디에이고로 돌아갔다. 한동안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김 씨는 그때를 돌아보며 “답답했다”는 말만 몇 번이나 반복했다.
잊고 있었던 발레가 그때 돌파구가 됐다. 침을 맞고 재활치료를 병행하면서 발레 훈련법 중 하나인 체케티 메서드 교습 자격증을 땄다. 처음엔 아이들을 가르치며 시범만 보였지만 무대에 대한 열망이 부상후유증을 눌렀다. 2010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입학한 그는 그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발레단에 입단했고 올해 초 ‘호두까기 인형’에서 아라비안 인형 역을 맡는 등 솔리스트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 그는 ‘지젤’의 몇 장면과 직접 안무한 ‘프래질(Fragile)’을 선보인다. ‘가수 활동 때도 자신이 서는 무대 안무는 직접 짜는 편’이었다는 그는 “사랑을 막 시작했을 때의 아슬아슬한 감정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는 4월 주역 데뷔 공연에서 수석무용수로 깜짝 승급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강효정 씨, 네덜란드댄스시어터2의 원진영 씨 등 해외에서 활약해온 한국 무용수 6명이 국내 정상급 무용수들과 기량을 겨룬다.
현재 SM엔터테인먼트와 계약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그는 “아직 확실히 결정된 건 없지만 앞으로 한국에 돌아와 학교도 다니고 가수로도 컴백하고 싶다”면서 “가수로서든 무용수로서든 인정을 받은 뒤 제가 가진 걸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나누는 학교를 세우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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