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지나면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내려갈 생각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앞으로 10년간은 소설만 쓸 생각입니다.” 등단 39년을 맞은 소설가 박범신(65)이 새로운 문학 도전에 나선다. 이번 학기를 끝으로 25년간 몸담았던 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에서 정년퇴직하는 그는 가족과 떨어져 논산으로 내려갈 예정.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비롯한 각종 직함도 조만간 모두 정리할 생각이다.》
“그동안 최선이 아닌 차선의 삶을 살았습니다.” 소설가 박범신은 22일 “모든 것을 정리하고 가을께 고향인 논산으로 내려가 소설에만 전념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예중앙 제공
서른아홉 번째 장편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문예중앙)를 출간한 22일, 그는 자신의 문학인생을 돌아보며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나의…’는 말굽이 손바닥에 자라난 한 남자의 야수적 폭력성과 처절한 사랑 얘기를 그린 소설이다.
“뜨겁게 (작품활동을) 했고, 주위에서 열심히 살았다고 평가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돌이켜보면 저는 항상 최선이 아닌 차선을 선택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회한이 남아 있어요. 앞으로 10년 내가 좋아하는 문학에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한 가정의 가장, 대학교수, 작가의 세 가지 역할을 하다 보니 문학에 최선을 다하기 힘들었다고 했다. 1980년대 신문 연재물을 연달아 선보이며 대중소설 작가로 입지를 굳혔지만 문단의 비판도 높았다. 1993년 절필했다 8년 만에 복귀하기도 했다.
“1980년대 연재소설을 많이 쓰면서 먹고살았는데 당시 문학의 최선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렇게는 이제 안 하려고 합니다.”
“두서없이 말이 긴 것 같다” “책에 대해서만 써 달라”고 멋쩍게 말하면서도 그는 스스로 말문을 열었다. 한참 말한 뒤에는 “한 대 피워야겠다”며 담배를 입에 물기도 했다.
“얼마 전 마지막 강의를 준비하면서 ‘나는 누구다’라고 얘기하고 싶었는데 정작 정의가 내려지지 않았어요. 나이 예순이 되면 얘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팔렸습니다. 그래서 밤새워 평생 좋아하고 싫어한 것을 따져봤는데 나는 집단을 싫어하고, 반(反)정파적이며, 반(反)계몽주의적으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어떤 파벌이나 정파에 들지 않아 상처받고 소외된 적도 있었다고 그는 토로했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고 했다.
“작가란 이름보다 예인(藝人)으로 불리는 게 좋아요. 이 나라는 작가들에게 예술만 아니라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한 시대를 관통해 왔습니다. 제가 평생 최선을 다하진 못했지만 작가로서 예술가의 자리를 지켜왔다고 자찬할 수 있습니다.”
‘다작(多作) 소설가’로 꼽혀온 그는 쉼 없이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글을 쓸 때만 그야말로 완벽한 구원을 받는다”고 했다. 소설을 안 쓰면 우울해지고 삶이 무료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나이가 드니까 존재론적 고독이랄까. 사방에서 바람이 불어와요. 이 나이에 유명해지고 싶다든가, 돈을 벌어야겠다는 세속적인 욕망은 100% 접었습니다. 나를 추리고 나갈 수 있는 길이 이것(소설)밖에 없어서입니다.”
지금도 머릿속에 쓸거리가 여럿 있다는 그는 ‘뭘 쓸지 모르겠다’고 고민하는 작가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래도 신변 정리를 위해 금년에는 신작을 내지 않겠다는 게 그의 ‘이색 목표’다.
가족과 떨어져 문학청년 시절을 보냈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작가는 “골방에 들어가서 글만 쓰겠다는 것은 아니다”며 웃으면서도 ‘청년 박범신’의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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