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북한군보다 더 ‘악랄’하게… 길 아닌 산으로만 진격! 진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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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 과학화전투훈련 대항군 체험해보니

“화랑!” “담배!” 30여 분을 전진하면서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몇 번이나 암구어를 외쳤다. 암구어 응답이 조금만 늦어도 총알(레이저)이 날아왔다. 훈련 대대 소속인 박희창 기자의 모습.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화랑!” “담배!” 30여 분을 전진하면서 곳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몇 번이나 암구어를 외쳤다. 암구어 응답이 조금만 늦어도 총알(레이저)이 날아왔다. 훈련 대대 소속인 박희창 기자의 모습.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O₂’는 6·25전쟁 발발 61주년을 맞아 냉혹한 전장의 실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볼 수 있는 육군 과학화전투훈련장(KCTC·Korea Combat Training Center)을 찾았다. 손효주 기자가 대항군 대대, 박희창 기자가 훈련 대대 소속으로 전투를 체험했다. 국방의 ‘창끝’을 가는 ‘숫돌’을 자처하는 그곳에선 막강한 대항군 부대가 실전 경험이 없는 장병들에게 전쟁의 참모습을 일깨워주고 있었다.

20일 오후 6시. 과학화전투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훈련지를 관통하는 비포장도로에 들어섰다. 순간 소총으로 무장하고 얼굴, 손, 목까지 위장크림을 바른 채 매복해 있는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훈련임에도 결연해 보이는 군인들의 표정과 전차의 모습을 보니 실제 전장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KCTC 소속 이경국 대위에 따르면 이곳의 대항군은 적군 역할만 전문으로 하는 강력한 전투부대다. 대항군의 전설이라고 불린 한 군인이 단신으로 2개 소대를 단 몇 시간 만에 소탕했을 정도라고 한다.

○ 대항군 전력이 월등한 이유

대항군은 처음 뽑힐 때부터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훈련소에서 차출되는 사병들은 키 170cm 이상, 맨눈 시력 0.5 이상, 착한 심성(心性) 등 다양한 조건에 부합해야 전문 대항군 대대에 들어갈 수 있다. 이들은 전술적 감각이 뛰어나다. 또 계속 같은 대대에서 같은 임무(대항군 역할)를 계속 수행함으로써 지휘관들과 장병들 간에는 눈빛으로 대화가 가능할 만큼 유기적 팀워크가 형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대항군 대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훈련부대에 진지를 내준 적이 없다.

KCTC 훈련은 대항군과 싸워 이겨야 한다는 승패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전투훈련의 핵심은 훈련부대를 가혹하게 훈련시켜, 유사시 즉각 싸워 이길 수 있는 전투형 부대로 육성시키는 데 있다.

대항군 대대의 모토는 ‘적보다 강한 적, 적보다 지독한 적’이다. 그래야 훈련 대상인 일반 부대가 실제 적과의 전투에서 싸워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육군의 보병부대들은 교대로 KCTC 훈련에 참가한다. 8년에 한 번꼴로 같은 대대가 훈련에 나선다. 그래서 복무기간이 2년인 병사가 KCTC 훈련에 두 번 이상 참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 대위는 “여단급 훈련이 가능해지면 지휘관은 재임기간 중, 병사들은 복무기간 중 1회 이상 체험이 가능해 진다”고 설명했다.

○ 북한군 편제를 갖춘 대항군

사회부 손효주 기자
사회부 손효주 기자
도로를 걷다 갑자기 산으로 들어갔다. 조그만 오솔길조차 나있지 않은, 말 그대로 그냥 산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대항군들은 길이 없는 산을 걸어가면서도 지휘소 방향을 귀신같이 찾아냈다. 그런 대항군을 쫓아가다 보니 사람은커녕 새 한 마리도 없을 것 같은 숲 한가운데에 지휘소 천막이 나타났다. 보통 사람은 이런 곳에 지휘소가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할 것이고, 찾기는 더더욱 불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휘소는 북한 용어인 ‘대대지휘감시소’로 불린다. 그야말로 대항군 대대의 브레인 역할을 하며, 모든 전투를 실시간으로 지휘한다. 이날 천막 안에서는 대대장, 정찰군관(정보참모), 박격포중대장, 포병군관, 통신군관, 유선반장 등이 적군과 아군을 나타내는 핀이 수십 개 꽂힌 상황판을 두고 방어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KCTC에선 대항군과 훈련대대가 공격과 방어를 교대로 진행한다. 며칠 전에 대항군이 먼저 공격작전을 했고 20, 21일은 대항군이 방어작전을 펼 차례였다.

대항군 대대장은 보통 2년 동안 근무한다. 지휘봉을 들고 작전을 수립하던 박재열 대대장은 “나는 지난해 12월에 부임했는데, 대대장 기간 동안 전투를 30회 넘게 치러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여기 훈련지역은 가장 힘들다고 소문이 자자한 곳입니다. 이 지역엔 제대로 된 길도 없지만 우리는 눈을 감고도 어디든 갈 수 있게 상상도 못 할 훈련을 합니다. 우리가 강해야 우리 군이 강해진다는 사명감이 이등병에게도 넘칩니다. 우리는 전문 대항군대대, 전갈대대입니다. 정말 지독하거든요. 한 번 물면 놓치지 않습니다.”

○ 경사 70도 산길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

이때 야전전화로 “야생마 들어갑니다”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오후 8시경이었다. 날이 밝을 때 적의 눈을 피해 숨겨뒀던 탱크와 대포 등을 어두워진 후 원래의 작전 위치에 배치하겠다는 말이었다. 지휘소에서는 긴장감이 흘렀지만 장병들은 기자에게 물 한 잔을 나눠주는 센스를 잊지 않았다.  
▼ “훈련통해 군 전력 높여… 대항군 역할 뿌듯”

오후 8시 20분. 지휘소로 온 3중대 2소대장을 따라 대항군 2참호로 이동했다. 이동 중 통신병이 잠깐 길을 잃을 정도로 지형이 험난했다. 가시나무가 얼굴을 찌르고 온몸이 나무에 쓸렸다. 그러나 대항군 병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경사가 70도 이상 되는 가파른 길을 아무렇지도 않게 올라갔다.

2참호에는 다른 소대 인원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두 명씩 짝을 지어 흩어져 있었다. 보통 사수와 부사수가 한 조였다. 소대장은 본부와의 통신을 위해 통신병과 함께 있었다. 참호에 있으니 전차가 들어오는, 낮지만 커다란 소리가 났다.

소대장에게 “밤에는 적군과 아군을 어떻게 알고 공격하냐”고 물었다. “달빛으로 구별할 수 있을 때도 있지만 보통 약속된 신호를 통해 구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수시로 바뀌는 신호를 못 대면 적군으로 알고 바로 공격한다고 했다. 소대장은 대항군 생활 3년차였다. 2참호는 평상시보다 적은 인원으로 배치돼 있었다. 편제된 인원 중 일부가 습격조나 잠복조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기동하는 훈련부대를 식별하면 이들은 먼저 화력을 유도하여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 중대 습격조와 잠복조는 화력유도와 후방타격 등으로 적이 참호에 다가오기 전 최대한의 피해를 준다.

○ 훈련부대 ‘사망자’ 만나다

오후 8시 50분. 불꽃놀이를 연상케 하는 연발 총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KCTC 훈련은 자유교전이기에 언제 어디서 교전이 시작될지 모른다. 이날은 특히 달이 뜨지 않아 매우 어두웠다. 달이 없는 하늘엔 쏟아질 듯한 별만 가득했다. 하지만 이런 낭만적 분위기를 깨는 듯 잊을 만하면 총소리와 박격포탄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소대장이 지도를 보기 위해 램프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램프는 생각처럼 밝지 않았다. 램프의 불빛 하나도 밤에는 적의 눈에 띌 수 있기 때문에 발광다이오드(LED) 중에서도 가장 조도가 낮은 램프를 사용하고 있었다.

“공격부대 약 20여명 발견. 현재 1005 고지 방향으로 이동 중.”

소대장과 함께 있던 통신병에게 무전이 들어왔다. 소대장의 조치가 바로 이어졌다. 습격조가 그곳에서 매복해 있다 공격군을 습격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소대장에게 대항군 역할을 하면서 무엇이 가장 만족스러운지를 물었다. “제가 훈련 부대의 스파링 상대가 됨으로써 우리 군의 전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이죠.” 힘들지 않느냐고도 물었다. “솔직히 힘들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습니다. 간부가 힘들다고 생각하면 내 부하들이 얼마나 더 힘들어지겠습니까.”

2참호에서 경계를 서다 1참호로 이동했다. 오후 11시 37분, 이동하는 중 갑자기 산에서 달이 튀어나왔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달이 뜨니 산이 아주 밝아지며 오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기자는 달빛이 이렇게 강한지 난생 처음 알았다.

1참호에 도착하자 훈련부대 ‘사망자’들이 힘없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사망한 병사들은 다소 예민해져 있었다. 사망 병사가 “죽었는데 어디로 가야 하냐?”라고 하자 대항군 병사가 “반말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 약간의 긴장 분위기가 조성되기도 했다.

○ 드디어 교전

오전 2시가 넘은 시간, 7월 3일 제대를 앞두고 있는 김태완 병장과 이제 대항군 대대에 들어온 지 8일밖에 안 된 고준영 이병이 나란히 경계를 서고 있었다. 고 이병은 며칠 전 첫 전투인 공격전을 치렀는데 생각지도 못한 지뢰를 밟아 ‘사망’했다고 한다. “오늘은 첫 방어전투인데 죽지 않는 게 목표예요.” 김 병장은 고 이병에게 2년 동안 KCTC에서 쌓은 노하우를 작은 목소리로 전해줬다. 김 병장의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지만, 알 수 없는 용어들이 띄엄띄엄 들려올 뿐이었다.

“사격 개시.”

갑작스러운 외침과 함께 바로 옆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순간 진공상태에 있는 듯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일단 한 발만 쏴 보십시오.”

김 병장의 큰 소리에 마음을 다잡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대대 지휘소에서 총 쏘는 법을 배웠지만, 빗발치는 총성에 머리 속이 하얘졌다. 김 병장이 안쓰러웠는지 자세를 잡아줬다.

“개머리판을 어깨에 잘 대십시오. 견착이라고 하는데, 안 그러면 반동 때문에 다칠 수도 있습니다.”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처음으로 훈련에 참가한 것이 후회됐다.

“못 할 것 같아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공포탄입니다. 제가 옆에서 소총을 잡아드릴게요.”

김 병장의 말에 다시 용기를 냈다. 그리고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방아쇠를 당겼다. ‘탕’ 하는 소리와 함께 오른쪽 귀가 멍해지고 발사 반동으로 총이 튀어 올랐다. 화약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이제 제 옆에서 가만히 계십시오.”

김 병장이 다시 전방을 향해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김 병장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설마 누가 맞지는 않았겠지?’

인제·홍천=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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