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커버스토리]대항군에 맞서 싸운 ‘훈련 대대’ 체험해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산 6개 넘어 새벽에 맹공격했건만 ‘전사자’ 신세로

딱, 딱.

“꼬리 끊어짐.”

군홧발에 밟힌 마른 나뭇가지들이 내지르는 비명 사이로 뒤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앞서 가던 소대원에게 똑같은 말을 작게 속삭였다. 뒤에 따라오던 소대원들과의 간격이 멀어졌다는 뜻이었다.

“소산해서(흩어져) 대기.”

소대장의 명령이 전달돼 돌아왔다. 바로 뒤에 있던 소대원에게 명령을 전달한 뒤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뙤약볕 아래 뜨겁게 달구어졌던 땅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운 한기를 내뿜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드니 별들이 쏟아져 내렸다. 소중한 사람들의 얼굴이 환한 별 속에 담겨 있었다.

지퍼를 열고 영현(英顯)백 안에 들어가 몸을 뉘였다. 관찰통제관이 기자의 가슴 위에 태극기를 올려놓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지퍼를 열고 영현(英顯)백 안에 들어가 몸을 뉘였다. 관찰통제관이 기자의 가슴 위에 태극기를 올려놓았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사주(四周) 경계 철저히 하시랍니다.”

약 1시간의 ‘기동’ 끝에 찾아온 짧은 평화로움은 그 말 한마디에 바람과 함께 날아갔다. 총을 고쳐 잡고 주변 경계에 나섰다. 순간 잊고 있었지만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와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 목숨을 걸고 1차 목표 지점을 점령하기 위해 나선 길이었다.

○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20일 오후 8시 강원 인제·홍천 육군 과학화전투훈련장(KCTC·Korea Combat Training Center)에서는 육군 비룡부대의 훈련이 한창이었다. 부대는 10박 11일의 훈련 일정 중 8일차로 마지막 임무인 공격작전을 수행하고 있었다.

도심의 밤과 산속의 밤은 달랐다. 달이 뜨지 않은 시간, 눈은 제 기능의 절반 이상을 상실했다. 50cm 정도 거리를 두고 앞서 걸어가는 소대원의 발도 보이지 않았다. 얼굴 바로 앞에까지 와 속삭이는 소대원의 눈, 코, 입이 어디 붙어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와 희미하게 보이는 검은 형체를 따라 그저 앞으로 내딛을 뿐이었다.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뻔하거나 푹 꺼진 웅덩이에 발이 빠지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군화 속에 작은 돌멩이 하나가 들어왔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바닥이 아파왔다. 잠깐이라도 멈춰 서면 돌멩이를 빼내기라도 할 테지만, 기동은 계속됐다.

“나무 조심.”

앞에 도사리고 있는 위험을 알려주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나마 위안이 됐다.

전투에서 공격은 보통 ‘주공(主攻)’과 ‘조공(助攻)’으로 나눠 치러진다. 주공은 전선 돌파를 담당하고, 조공은 주공이 쉽게 전선을 돌파할 수 있도록 적을 엉뚱한 곳에 붙잡아두는 역할을 수행한다. 가장 이상적인 공격은 아군의 조공이 적군의 주력을 붙잡아 두고, 아군의 주공이 적군의 조력을 공격해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다.

기자가 배치된 소대는 ‘주공’을 맡아 1차 목표 지점을 점령한 후 또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적군(KCTC 대항군 전문 대대)을 기만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이번 공격 작전의 성패를 좌우하는 가장 핵심적인 역할이었다. 그만큼 소대의 이동도 은밀했다. 멧돼지 등 야생동물에 의해 자연스럽게 생겨난 길을 따라, 간혹 새로 길을 만들어가며 ‘부엉이’ 능선을 타고 이동했다.

콰콰쾅.

저 멀리에서 적 포탄이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총성이 울려 퍼졌다. 뒤이어 어렴풋이 장병들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근처에서 교전이 벌어졌다. 해당 지역을 벗어나기 위해 소대의 이동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두 손에 든 총이 자꾸만 땅으로 향했다.

4시간이 넘게 800m 고지와 1000m 이상 고지를 넘나들며 이동한 뒤에야 대기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대대장의 공격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숲 속의 비탈길 위에서 1시간 동안 대기했다. 어디선가 “산 6개를 넘었다”는 말이 들려왔다.

“지금은 야간투시경도 있고 다른 전투 장비들도 좋은데, 6·25전쟁 때는 어떻게 싸웠나 싶습니다.”

한 소대원이 물통을 건네며 속삭였다.

실제로 1950년 6·25전쟁 직전 한국군의 군사력은 매우 열악했다. 전차는 한 대도 보유하지 못했고, 자주포와 곡사포, 박격포를 포함한 화포도 1051문밖에 없었다. 함정은 경비함 36척이 다였고, 항공기도 22대만을 가지고 있었다. 이에 비해 북한군은 전차 242대, 화포 2492문, 함정 110척, 항공기 226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병력도 한국군은 10만3827명에 불과했지만, 북한군은 20만1050명에 달했다.

○ 교전 중 ‘사망’

“힘들지 않아요?”

“힘들죠. 하지만 함께 걷는 소대원들이 있으니까 자신 있습니다. 좀 쉬어 두십시오. 이따 전투가 일어나면 더 힘들어질 겁니다.”

21일 오전 1시. 드디어 무전기에서 중대장의 공격 명령이 떨어졌다. 다시 이동이 시작됐다.

“공병 앞으로 나오랍니다.”

무거운 장비를 짊어진 채 소대 뒤에서 따라오던 공병들이 앞으로 나아갔다. 매설돼 있는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뒤에서 ‘삐삐’ 소리가 들렸다.

“아, 미치겠네. 도대체 어디서 보고 있는 거야.”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적군의 포탄이 떨어져 소대원 5명이 사망한 것이었다. 소대의 이동 경로가 적군에게 노출됐다는 사실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곳에는 어둠만이 내려앉아 있었다. 사망자들은 방탄모를 벗고 남은 탄약을 소대원들에게 나눠줬다.

소대장은 지뢰를 제거하지 않고 우회하기로 했다. 이동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30분 정도 지나 적군의 참호 앞에서 전투가 재개됐다.

“3시 방향이다.”

소대장의 지휘와 함께 총성이 숲 가득히 울려 퍼졌다. 총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빛이 여기저기서 반짝거렸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바닥에 엎드려 정확하게 적군을 조준해 총을 쏘는 소대원들과 달리 그저 3시 방향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탄약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여기서 살아남는 것이 중요할 뿐이었다.

삐삐∼

어디서 총알이 날아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결국 팔에 달린 감지기에 ‘사망’이라는 두 글자와 함께 ‘AK’가 떴다. 대항군은 북한군과 유사한 복장을 하고 있지만 훈련 부대와 같은 무기(K2 소총)와 장비를 사용한다. 하지만 보다 사실적인 훈련을 위해 훈련 부대 병사가 대항군 총알(레이저)에 맞으면 AK(아카보) 소총이 표시된다. 대항군이 훈련 부대가 쏜 총에 맞으면 ‘K2’가 화면에 표시된다.

한 명도 제대로 맞혀보지 못하고, 그렇게 죽음을 맞이했다. 허탈한 마음에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 죽음의 의식

30여 분이 지나자 현장을 통제하는 KCTC 관찰통제관에 의해 전투가 종료됐다. 피해는 심각했다. 중대장과 소대장을 비롯해 중대 전체에서 30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최초에 계획했던 기만 작전은 포기됐다. 정면 돌파를 강행하기로 한 중대를 뒤로하고 다른 사상자들과 함께 구호소로 향했다.

기자는 사상자들 틈에 끼여 트럭을 타고 대대 구호소로 이동했다. 구호소 옆에서는 짙은 녹색 칸막이가 쳐진 채 영현(英顯·죽은 사람의 영혼을 높여 이르는 말) 체험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저도 들어가야 되나요?”

“물론입니다.”

쭈뼛거리며 나란히 늘어선 영현백 중 하나에 몸을 넣었다. 바닥의 냉기가 등을 통해 그대로 전달돼 왔다. 누군가가 다가와 지퍼를 올렸다. 달빛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 온몸이 갇혀버렸다. 뒤이어 가슴 위를 덮는 천이 느껴졌다. 태극기였다. 그제야 ‘사망’이라는 두 글자가 실감이 났다.

실제로 사단급 이상 부대에는 이러한 장례를 전문으로 하는 ‘영현반’이 따로 있다. 전장에 나온 영현반 요원들은 전사자의 유해를 영현백에 담아간다.

진혼곡과 함께 코끝을 맴도는 향냄새가 문득 가슴을 때렸다. 바닥에 등을 대는 순간 잠들 것처럼 피곤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정신이 맑아졌다.

‘죽으면 이렇게 처리되는구나.’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옆에 함께 누워 있던 병장의 작은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왜 한숨을 쉬고 그러세요?”

“KCTC 훈련이 끝나는 23일이 전역입니다. 마지막으로 후임들과 함께 잘 싸우고 싶었는데,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무척 아쉽습니다.”

살아오며 가장 길었던 1시간이 조용히 지나갔다. 영현백을 여는 지퍼 소리에 눈을 뜨자 멀리 먼동이 터 오고 있었다.

인제·홍천=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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