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문모 씨(39·서울 광진구 광장동)는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8)이 자꾸만 왼손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글씨는 물론이고 젓가락질, 공 던지기 등 손으로 하는 모든 활동에서 왼손을 선호하는 딸을 두고 문 씨는 아내(38)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왼손잡이가 머리가 좋으므로 그냥 왼손을 쓰게 해야 한다”는 문 씨와 “한국 사회에서는 오른손잡이여야 편하기 때문에 교정해줘야 한다”는 아내는 아직까지 뜻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왼손잡이가 정말 머리가 좋을까. 왼손을 쓰면 정말 사는 데 불편할까.
전문가들은 “왼손잡이가 ‘사회적 소수’이기는 하지만 왼손잡이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전체 인구에서 왼손잡이의 비율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 왼손잡이의 장점
왼손잡이로 살면 장점이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몽펠리에대의 미셸 레몽 교수(발달생물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레몽 교수는 리옹대의 운동선수와 세계 톱 수준의 운동선수들을 분석한 결과 펜싱 권투 테니스 등 마주보고 하는 경기에서 왼손잡이의 비율이 특히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테니스의 경우 세계 상위 랭커 중 왼손잡이의 비율이 16%였고 크리켓(영국연방국가들이 즐기는 야구와 비슷한 운동)의 투수들은 15∼27%가 왼손잡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 중 왼손잡이의 비율(남자 10%, 여자 8%)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다.
특히 예선에서 본선으로 올라갈수록 왼손잡이 비율은 더 높아진다. 1979년부터 1993년까지 14년간 펜싱 세계대회 본선에 참가한 선수 중 33%가 왼손잡이였으며 4강 이상에 진출한 선수는 50%가 왼손잡이였다.
하지만 서로 마주보고 하는 종목이 아닌 경우 왼손잡이의 비율은 일반인과 비슷했다. 축구 골키퍼는 9.6%,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투포환 선수는 10.7%가 왼손잡이였다.
레몽 교수는 “생활환경이 오른손잡이 위주로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왼손잡이 비율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왼손잡이만의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의 경쟁에서 늘 우세한 위치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불편을 모두 감수했고 이들의 유전적 특성이 꾸준히 후세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 그래도 불편한 사회
중세 유럽 성(城)의 계단 구조에서도 왼손잡이가 ‘살아남은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성의 첨탑을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며 올라가게 돼 있다. 적군이 침입했을 경우 첨탑을 수비하는 군사들은 가운데 빈 공간을 활용해 자유롭게 오른손으로 칼을 휘두르며 방어할 수 있는 반면, 첨탑을 오르면서 공격하는 적군이 오른손으로 휘두르는 칼은 오른쪽 벽에 수시로 부딪치게 돼 있다.
그런데 치고 올라오는 적군이 왼손잡이라면 어떨까. 그들은 수비하는 오른손잡이 병사와 같이 가운데 빈 공간에 대고 편안하게 칼을 휘두르면서 공격해 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평소 왼손잡이와 대적할 일이 드문 오른손잡이 병사들은 엉뚱한 방향에서 날아오는 칼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맞서 싸우는 상황이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환경은 오른손잡이 위주로 돼 있기 때문에 왼손잡이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위, 스크루드라이버, 방 문과 냉장고 문, 기타 피아노 등 각종 악기와 공작기계, 군대에서 사용하는 소총 등은 모두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왼손잡이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른손을 사용하는 훈련을 일상생활에서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달리 두 손을 고루 쓰게 된다. ○ 미국 대통령이 되려면 왼손을 써라?
오른손잡이는 좌뇌가 발달해 수리, 논리가 뛰어나고 왼손잡이는 우뇌가 발달해 공간 지각능력과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통념도 있으나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좌뇌 우뇌 중 어떤 쪽 뇌를 주로 사용하느냐의 문제는 있을 수 있으나 좌뇌=논리, 우뇌=운동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문 씨와 같은 부모들이 고민하는 이유는 또 있다.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최근 미국 대통령을 지낸 7명 중 4명이 왼손잡이이며 로스 페로, 밥 돌, 존 매케인 등 대선 당시 경쟁자들도 모두 왼손잡이였다는 사실. 또 최근 세기의 결혼식으로 화제가 된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 역시 왼손잡이이며 각종 TV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 중 상당수가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며 부모들은 ‘우리 자녀도 왼손을 쓰게 하면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만들거나 오른손잡이를 억지로 왼손잡이로 교정할 경우 뇌가 적응하지 못해 언어장애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자녀가 주로 사용하는 손은 부모가 정해주지 말고 본인이 선택하도록 맡기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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