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Life]불편한 왼손잡이? 그들은 강했다

  • 입력 2011년 6월 25일 03시 00분


왼손검객, 반대쪽에 칼 들어 변칙 공격… 테니스 등 맞대결 종목에 많아

왼손잡이 테니스선수 라파엘 나달
왼손잡이 테니스선수 라파엘 나달
회사원 문모 씨(39·서울 광진구 광장동)는 요즘 고민거리가 하나 생겼다. 초등학교 1학년인 딸(8)이 자꾸만 왼손을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글씨는 물론이고 젓가락질, 공 던지기 등 손으로 하는 모든 활동에서 왼손을 선호하는 딸을 두고 문 씨는 아내(38)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왼손잡이가 머리가 좋으므로 그냥 왼손을 쓰게 해야 한다”는 문 씨와 “한국 사회에서는 오른손잡이여야 편하기 때문에 교정해줘야 한다”는 아내는 아직까지 뜻을 모으지 못하고 있다.

왼손잡이가 정말 머리가 좋을까. 왼손을 쓰면 정말 사는 데 불편할까.

전문가들은 “왼손잡이가 ‘사회적 소수’이기는 하지만 왼손잡이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에 전체 인구에서 왼손잡이의 비율이 줄어들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 왼손잡이의 장점


왼손잡이로 살면 장점이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프랑스 몽펠리에대의 미셸 레몽 교수(발달생물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레몽 교수는 리옹대의 운동선수와 세계 톱 수준의 운동선수들을 분석한 결과 펜싱 권투 테니스 등 마주보고 하는 경기에서 왼손잡이의 비율이 특히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테니스의 경우 세계 상위 랭커 중 왼손잡이의 비율이 16%였고 크리켓(영국연방국가들이 즐기는 야구와 비슷한 운동)의 투수들은 15∼27%가 왼손잡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인 중 왼손잡이의 비율(남자 10%, 여자 8%)을 감안하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치다.

특히 예선에서 본선으로 올라갈수록 왼손잡이 비율은 더 높아진다. 1979년부터 1993년까지 14년간 펜싱 세계대회 본선에 참가한 선수 중 33%가 왼손잡이였으며 4강 이상에 진출한 선수는 50%가 왼손잡이였다.

하지만 서로 마주보고 하는 종목이 아닌 경우 왼손잡이의 비율은 일반인과 비슷했다. 축구 골키퍼는 9.6%, 원반던지기 창던지기 투포환 선수는 10.7%가 왼손잡이였다.

레몽 교수는 “생활환경이 오른손잡이 위주로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왼손잡이 비율이 줄어들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왼손잡이만의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의 경쟁에서 늘 우세한 위치에 설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불편을 모두 감수했고 이들의 유전적 특성이 꾸준히 후세에 전해졌다”는 것이다.

○ 그래도 불편한 사회

중세 유럽 성(城)의 계단 구조에서도 왼손잡이가 ‘살아남은 이유’를 엿볼 수 있다. 성의 첨탑을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며 올라가게 돼 있다. 적군이 침입했을 경우 첨탑을 수비하는 군사들은 가운데 빈 공간을 활용해 자유롭게 오른손으로 칼을 휘두르며 방어할 수 있는 반면, 첨탑을 오르면서 공격하는 적군이 오른손으로 휘두르는 칼은 오른쪽 벽에 수시로 부딪치게 돼 있다.

그런데 치고 올라오는 적군이 왼손잡이라면 어떨까. 그들은 수비하는 오른손잡이 병사와 같이 가운데 빈 공간에 대고 편안하게 칼을 휘두르면서 공격해 올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평소 왼손잡이와 대적할 일이 드문 오른손잡이 병사들은 엉뚱한 방향에서 날아오는 칼에 당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맞서 싸우는 상황이 아니라면 세상의 모든 환경은 오른손잡이 위주로 돼 있기 때문에 왼손잡이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가위, 스크루드라이버, 방 문과 냉장고 문, 기타 피아노 등 각종 악기와 공작기계, 군대에서 사용하는 소총 등은 모두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왼손잡이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른손을 사용하는 훈련을 일상생활에서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달리 두 손을 고루 쓰게 된다.

○ 미국 대통령이 되려면 왼손을 써라?


오른손잡이는 좌뇌가 발달해 수리, 논리가 뛰어나고 왼손잡이는 우뇌가 발달해 공간 지각능력과 운동신경이 뛰어나다는 통념도 있으나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좌뇌 우뇌 중 어떤 쪽 뇌를 주로 사용하느냐의 문제는 있을 수 있으나 좌뇌=논리, 우뇌=운동의 등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문 씨와 같은 부모들이 고민하는 이유는 또 있다. 버락 오바마,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등 최근 미국 대통령을 지낸 7명 중 4명이 왼손잡이이며 로스 페로, 밥 돌, 존 매케인 등 대선 당시 경쟁자들도 모두 왼손잡이였다는 사실. 또 최근 세기의 결혼식으로 화제가 된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 역시 왼손잡이이며 각종 TV 드라마와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연예인 중 상당수가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것을 보며 부모들은 ‘우리 자녀도 왼손을 쓰게 하면 저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만들거나 오른손잡이를 억지로 왼손잡이로 교정할 경우 뇌가 적응하지 못해 언어장애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 신경외과 전문의들은 “자녀가 주로 사용하는 손은 부모가 정해주지 말고 본인이 선택하도록 맡기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한다.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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