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51>가지나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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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풀로 만든 자라’… 약으로 챙겨 먹던 음식

장마로 날씨는 후덥지근하고 습도마저 높으니 입맛을 잃기 쉽다. 이럴 때는 가지요리가 제격이다. 볶아도 좋고 무쳐도 맛있으며 가지찜으로도 많이 먹는다. 냉국으로 먹어도 별미다.

가지는 여름에 많이 먹는데 한방에서는 성질이 차가워 한여름에 더위를 식힐 수 있다고 했다. 다만 본초강목에 성질이 차기 때문에 많이 먹으면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가지가 평범한 채소에 지나지 않지만 고문헌을 보면 처음 가지를 맛본 사람들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하고 이국적인 맛의 채소라고 생각했다. 당나라 사람인 진장기가 쓴 본초습유(本草拾遺)에 가지는 맛이 ‘낙소’와 비슷하다며 다른 말로는 곤륜과라고 부른다고 했다.

낙소는 소젖 락(酪), 연유 소(소)자로 이뤄진 단어인데 지금의 치즈나 버터 비슷한 식품이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별것 아니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임금이나 노대신이 특별히 약으로 챙겨 먹었던 음식이다. 그러니 당나라에서는 가지를 황제나 고관이 먹는 이국적인 음식과 동급으로 본 것이다.

가지는 채소이기는 하지만 특별히 ‘고기 맛이 나는 채소’라는 인식이 강했다. 치즈와 버터 맛이 난다고 해서 낙소라고 부른 것도 그렇지만 청나라 때 소설인 홍루몽에서는 가지를 아예 고기에다 비유하고 있다.

홍루몽에 가지로 만든 요리가 보이는데 이름이 초별갑(草鼈甲)이다. 풀이하자면 풀(草)로 만든 자라인 별갑(鼈甲)이라는 뜻이니까 가지에서 자라의 맛을 느꼈던 모양이다.

중국인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자라를 별미의 강장식품으로 여기니 가지나물을 자라에 버금가는 최고의 요리로 쳤던 것이다. 본초강목에도 가지를 초별갑이라고 기록할 만큼 약효 역시 자라와 비슷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가지의 별명인 곤륜과(崑崙瓜)에도 가지에 대한 옛날 사람들의 인식이 담겨 있다. 곤륜과란 곤륜산에서 나는 오이라는 뜻이며 곤륜산은 중국의 신화책인 산해경(山海經)에서 신선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나온다. 즉 곤륜과에는 신선들이 먹는 채소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옛날 사람들은 곤륜산이 지금의 티베트와 칭하이(靑海) 성 사이에 있다고 상상했다. 그러니 곤륜과라는 이름에는 가지가 서쪽에서 전해진 채소라는 뜻도 포함돼 있다.

사실 가지는 인도가 원산지다. 자치통감(資治通鑑)에는 한나라 때 가지를 키웠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보면 1, 2세기 무렵 인도에서 티베트를 넘어 동쪽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가지는 이국적이고 진귀한 맛의 채소로 이름을 떨쳤는데 그중에서도 우리나라에서 키운 가지가 중국에까지 유명했던 모양이다. 순조 때 한치윤이 쓴 해동역사(海東繹史)에 이와 관련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

“신라에 가지 종자가 있는데 모양이 계란처럼 생겼다. 광택이 있으며 엷은 보라색을 띠고 있는데 꼭지가 길고 맛이 달다. 그 씨앗이 지금 중국에 널리 퍼져 있다.”

한치윤이 해동역사에 뜬금없이 적어 놓은 것이 아니라 당나라 때 책인 유양잡조(酉陽雜俎)와 송나라 때 문헌인 본초연의(本草衍義)를 인용해서 쓴 기록이다. 원나라 때 왕정이 쓴 농업서인 농서(農書)에도 ‘가지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발해의 가지(渤海茄)가 열매가 실하다’고 했다. 진작부터 한반도 일대에서 재배하는 가지가 맛이 좋기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던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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