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예술을 찾는가, 명성에 홀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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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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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예술하는 습관’
대본★★★★ 연기★★★☆ 연출★★★☆ 무대★★★☆

영국 출신의 세계적 시인 위스턴 휴 오든과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감춰진 삶을 극중극 형식으로 풀어낸 연극 ‘예술하는 습관’. 왼쪽부터 오든 역을 맡은 배우 피츠 역의 이호재 씨, 전기작가 험프리 카펜터 역을 맡은 배우 도널드 역의 민복기 씨, 브리튼 역을 맡은 배우 헨리 역의 양재성 씨, 무대감독 케이 역을맡은 오지혜 씨. 명동예술극장 제공
영국 출신의 세계적 시인 위스턴 휴 오든과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의 감춰진 삶을 극중극 형식으로 풀어낸 연극 ‘예술하는 습관’. 왼쪽부터 오든 역을 맡은 배우 피츠 역의 이호재 씨, 전기작가 험프리 카펜터 역을 맡은 배우 도널드 역의 민복기 씨, 브리튼 역을 맡은 배우 헨리 역의 양재성 씨, 무대감독 케이 역을맡은 오지혜 씨. 명동예술극장 제공
여기 노시인이 있다. 이미 30대에 T S 엘리엇 이후 최고의 영국 시인이란 타이틀을 거머쥔 대시인이다. 하지만 젊은 시절 거장의 반열에 올라섰던 그가 노년에 발표한 시는 아무도 읽지 않는다.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아도 막상 그의 시를 읽은 이는 많지 않다. 엘리엇처럼 영국 출신으로 1939년 미국으로 귀화한 위스턴 휴 오든(1907∼1973)이다.

노작곡가도 있다. 역시 20대부터 유명해졌고 30대에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를 발표하며 국제적 명성을 획득했다. 헨리 제임스의 심리소설을 오페라로 옮긴 ‘나사의 회전’과 말년에 발표한 오페라 ‘베니스에서의 죽음’(토마스 만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이다.

연극 ‘예술하는 습관’(박정희 연출)은 이 두 명의 예술가를 다룬다. 물론 작품을 파고들다 보면 그 심오함에 감탄하게 될 인물들이다. 하지만 현대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고서는 이름이 낯선 것도 당연하다. 그들의 모국에서조차 두 사람의 작품을 제대로 향유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아마 영국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에서 낭송된 오든의 시 ‘장례식 블루스’를 기억하거나 어린이 음악회에서 해설을 곁들인 브리튼의 ‘청소년을 위한 관현악 입문’을 들어본 정도 아닐까.

여기까지 읽고 이 연극이 시와 음악이 흐르는 예술적 향취 가득한 작품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조지왕의 광기’와 ‘히스토리 보이스’로 유명한 극작가 앨런 베닛의 이 최신작(2009년)에서 묘사되는 두 예술가는 괴팍함을 넘어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예술가란 점을 빼고도 두 사람은 동성애자(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같은 게이라도 둘은 대조적인데 오든(이호재)이 싱크대에 오줌 싸고 아무데서나 방귀 뀌는 무례한 게이였다면 브리튼(양재성)은 좀 더 우아하면서도 어린 남자아이에게 집착하는 게이였다. 베닛은 두 사람을 연결해줄 징검다리로 두 사람의 전기를 썼던 험프리 카펜터(민복기)를 등장시킨다. 카펜터의 시각을 빌려 두 위대한 예술가의 숨겨진 삶을 까발리는 것이다. 오든이 미국으로 망명한 이유 중 하나가 동성애 때문이라든가 브리튼이 마이클 잭슨 뺨치게 많은 어린이와 사고(?)를 쳤지만 정작 한 번도 스캔들이 터진 적이 없다는 것들이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좋은 예술가는 죽은 예술가뿐”이라는 반(反)예술가 선언을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오히려 위대한 예술가를 동성애자로 등치시킴으로써 그들 역시 ‘사회적 소수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들이 마스터니 마에스트로로 불리며 아무리 대단한 취급을 받더라도 그들은 영원한 비주류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그들이 예술적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고난 뒤 휴지처럼 버려버린 남창(男娼)과 어린 소년들이야말로 그들의 분신과 같은 존재다.

연극 속 극중극 제목 ‘칼리반의 날(Caliban's Day)’은 이를 겨냥한 것이다. 이는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에 대해 논하면서 주인공 프로스페로의 노예이자 돌연변이인 칼리반을 내세웠던 오든의 장시 ‘바다와 거울’을 환기시키는 극적 장치다. 작품 속에서 항상 주변부적 존재에 관심을 기울였던 예술가들이 정작 삶에선 왜 그토록 냉정했던 걸까. 영국이 자랑하는 두 거장의 삶을 파고들면서 작가 베닛이 아프게 박아놓은 쐐기다.

연극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예술가의 작품보다 그 명성이나 사생활에 더 탐닉하는 우리 시대 예술에 대한 우아한 풍자를 펼친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의 명성을 소비할 뿐 그들이 생산하는 예술은 제대로 음미하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가에게 예술은 본업이 아니라 취미가 되는 반어적 상황이 빚어진다. 연극의 제목을 ‘예술하는 습관’보다는 ‘예술하는 취미’로 삼고 더 정공법을 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공연 보기 전 ‘예습하는 습관’이 좀 필요한 작품이다.

7월 10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1만5000∼4만 원. 1644-2003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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