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남성복도 꽃무늬-원색 춤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1일 03시 00분


밀라노 패션쇼로 본 뉴 트렌드

7월의 시작이다. 올여름은 예년보다 더 무더울 것이라는 기상청 예보에 ‘무엇을 입어야 할지’ 고민부터 생긴다. 옷장을 들여다보니 당장 내일 입을 옷도 마땅치 않은 상황. 하지만 패션계는 벌써 내년 여름을 준비하고 있다.

지난달 18일부터 나흘 동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2012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이 열렸다. 1년에 2번 개최되는 컬렉션은 다음 시즌의 경향을 예측하는 역할을 한다. 대체로 남성복 컬렉션이 한 달 정도 먼저 열린 후 여성복 컬렉션이 열린다. 그중에서도 전 세계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이 총출동하는 밀라노 남성복 컬렉션은 파리, 뉴욕, 런던 컬렉션에 앞서 가장 먼저 개최된다. 그래서 다음 시즌의 경향을 가장 먼저 가늠해 볼 수 있는 컬렉션이기도 하다.

동아일보 위크엔드3.0이 국내 대표적인 패션트렌드 분석기관인 PFIN그룹과 함께 밀라노 컬렉션에 선보인 내년의 남심(男心)을 사로잡을 패션 경향을 미리 살펴봤다. 그리스발 재정위기로 유럽 전반의 경제가 불안한 상황이지만 2012 봄여름 밀라노 컬렉션은 다채로운 색상과 프린트 그리고 똑똑해진 소재들이 어우러져 예전보다 훨씬 자신감이 묻어났다.

패션이 어려운 남자들이라면 밀라노의 런웨이로 눈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요즘 전 세계 정치, 사회, 경제적으로 가장 큰 이슈는 기후다. 패션계도 마찬가지다. 매일 매일 날씨 때문에 옷장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지는 우리들처럼 2012 봄여름 컬렉션에 등장한 브랜드들에서도 변덕스러운 날씨로 고민하는 디자이너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질샌더는 투명비닐(PVC) 소재의 방수 재킷에 실크나 울 섬유처럼 자연 친화적인 소재의 이너 아이템을 접목했다. 궂은 날씨 속 비를 피하면서도 고급스럽고 격식을 차린 스타일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는 디자이너의 유머가 돋보인다. 목에 거는 아이패드 캐리어는 요즘 대세가 된 태블릿PC와 현대인의 삶을 반영한 아이템이다. 이 아이템은 사람들의 손을 자유롭게 할 뿐 아니라 방수 재킷 속에 넣으면 비에 젖지 않게 갖고 다닐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
믹스매치한 스포츠-레저풍 남성복 강세

과거 아웃도어나 스포츠 전문의류에서 볼 수 있었던 아이템들이 패션쇼 런웨이에 소개된 것도 이번 남성복 컬렉션의 큰 특징 가운데 하나다. 몽클레어나 캘빈클라인, 프랭키 모렐로 등 여러 브랜드에서도 너나 할 것 없이 비바람을 이길 수 있는 다양한 아우터를 선보였다. 또 갈수록 아열대 기후로 바뀌는 지구촌 여름 날씨에 대한 해결책으로 매시 소재처럼 습기는 차단하고 땀은 빨리 배출하는 흡습속건 기능성 소재들이 중점적으로 소개됐다.

내년 7월에 개최되는 런던 올림픽을 맞아 여러 브랜드가 스포츠에서 영감을 얻은 아이템을 선보였다. 몽클레어는 펜싱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런웨이에 올렸고 캘빈클라인,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컬렉션에서도 올림픽이라는 테마가 패션 소재가 됐다.

하지만 남성복의 주인공은 단연 슈트다. 이번 밀라노 컬렉션에서도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슈트들이 눈길을 끌었다. 전반적으로 정형화되고 격식과 기본에 충실한 스타일이 큰 그림이다. 같은 블레이저라도 방수소재를 입히고 언제든지 접어서 휴대가 용이한 아우터는 변덕스러운 날씨에 대비한 멋쟁이 신사들을 위한 아이템이다.

변신을 꾀하는 남성들을 위해 스트라이프와 체크 정도에 머물렀던 남자 옷들도 프린트와 패턴이 훨씬 과감해지고 다채로워졌다. 올 봄여름 여성복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전원풍의 꽃무늬가 남성복에 등장한 것만 봐도 그렇다. 세계 각국의 이국적인 패턴과 일러스트 프린트, 그리고 강한 원색은 한층 밝고 경쾌해진 내년 남성복 시장의 흐름을 읽어주는 아이템들이다.


이런 경향을 가장 잘 드러낸 브랜드는 프라다다. 프라다의 수석디자이너 미우치아 프라다는 ‘고급스러움’으로 대표되는 골프의 드레스 코드를 그녀만의 언어로 다시 썼다. 인조 잔디 위에서 진행된 프라다 컬렉션에서는 레트로 패턴의 스카프와 빈티지 느낌의 일러스트가 그려진 셔츠, 핑크빛 꽃무늬 바지가 등장했다. 최근 골프 인구가 한층 젊어지고 있는 상황을 반영해 눈길을 끌었다.

프라다가 미소년의 장난기 가득한 스타일을 제안했다면 1960년대 영국신사에서 영감을 받은 버버리 프로섬은 장인정신이 돋보이는 이국적인 패턴을 선보였다. 에스닉한 분위기를 버버리 특유의 정체성을 살려 재해석한 점이 돋보인다. 버버리의 크리에이티브 총괄책임자 크리스토퍼 베일리는 “다양한 색감을 이용해 손으로 제작한 듯 매우 정교한 디테일을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버버리 프로섬에서는 색색의 나무장식과 수공예 느낌이 물씬 나는 인디언 모티브가 눈길을 끌었다. 이런 섬세한 디테일 장식은 간결한 실루엣의 기본 아이템에 더해져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또 전통적인 패턴을 재해석하는 경향이 남성복 전반에 나타났다. 보테가 베네타는 체크무늬에 번지는 듯한 효과를 줘 자연스러움을 강조한 ‘체크의 재발견’이 돋보였다. 닐 바렛은 전통적인 하운드투스 체크(남성정장에 주로 쓰이는 영국식 체크무늬)와 글렌 체크(작은 체크무늬가 모인 큰 체그무늬)를 그래픽으로 변형시켜 한층 젊어진 체크무늬를 풀어냈다.

스타일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많은 디자이너가 새로운 프린트에 대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티셔츠나 니트, 카디건, 셔츠 등 기본 의상이라도 프린트가 덧입혀지면 캐주얼 의상뿐 아니라 클래식 의상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유럽 남성들 못지않게 한국 남성들도 손쉽게 도전해볼 만한 믹스앤드매치(Mix and Match·섞어입기) 아이템이다.

컬렉션에선 ‘무엇을 입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입느냐’를 주목해야 한다. 옷도 옷이지만 입는 방식, 즉 스타일에 따라 옷의 품위, 맵시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이너들은 정성껏 준비한 작품들을 소비자들이 최대한 입고 싶게끔 표현한다. 또 그게 하나의 유행으로 떠오르곤 한다. 그런 면에서 액세서리는 남성들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패션의 완성이다. 이번 밀라노 컬렉션에 선보인 각 브랜드의 액세서리에서도 옷에서 보인 트렌드가 그대로 반영됐다. 이국적인 모티브에서 영향을 받은 색상과 패턴, 소재들이 등장하고 액세서리에서도 기능성에 대한 고민이 엿보였다.

가장 주목해 볼 아이템은 바로 신발이다. 여성들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맞는 레인부츠와 젤리슈즈를 찾아 헤매는 동안 남자들도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신발에 날씨를 염두해 둔 소재를 입힌 것.

올여름 인기 아이템 중 하나이기도 한 에스파드리유(캔버스 소재의 신발로 삼베를 엮어 만든 밑창이 특징)를 비롯해 지난 시즌의 러그솔(돌기처럼 밑바닥이 울퉁불퉁한 신발)에 이어 2012 봄여름 밀라노 컬렉션에서는 클래식한 신발에도 스포티한 느낌의 바닥 솔이 접목됐다. 대표적인 남성복 브랜드 제냐, 아르마니를 비롯해 프라다, 버버리 프로섬, 미소니 등의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루버솔(압착고무창)과 러그솔, 코르크 등의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 신발을 제안했다. 특히 골프 테마에 맞춰 선보인 프라다의 화려한 고무 스파이크 솔과 에어맥스가 연상되는 캘빈클라인의 투명한 PVC 솔, 버버리 프로섬의 코르크 솔 슈즈가 대표적이다.

여행과 스포츠라는 이번 컬렉션의 주요 흐름에 맞춰 가방은 빅백과 가볍게 손에 들 수 있는 클러치 형태가 많이 등장했다. 다양한 소재를 엮어 만든 가볍고 이국적인 패턴과 소재의 가방들이 새롭게 등장했다. 자연에서 얻은 소재감을 최대한 살리고 디테일에서는 수공예 느낌을 살렸지만 전체적인 외형은 심플하고 클래식하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남성들의 스카프 역시 이국적인 느낌을 강조하기보다 기본에 충실한 스타일에 부분적으로 생동감을 주는 포인트 액세서리로 역할을 다했다.

PFIN은 이번 밀라노 컬렉션을 레저와 여행, 스마트로 압축했다. 갈수록 현명해지는 소비자, 그 가운데서도 패션에 눈떠가는 남성 소비자를 잡기 위한 디자이너들의 고민이 묻어난 컬렉션이라는 것. 강현우 PFIN 연구원은 “이번 밀라노 컬렉션은 과거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현재와 완벽히 호환할 수 있는 스타일이 주를 이뤘다”며 “대부분의 디자이너가 어느 한 가지가 아닌 다양한 분야에서 영감을 얻어 믹스앤드매치한 스타일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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