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장환수의 ‘스포츠와 수학’]지장과 덕장, 누가 더 헹가래를 많이 받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일 03시 00분


김성근 감독(왼쪽)과 강병철 전 감독
김성근 감독(왼쪽)과 강병철 전 감독
▶투수가 공 1개를 던졌다. 몇 개의 수치화된 기록이 탄생할까. 그냥 숫자의 홍수라고 생각하면 된다. 스트라이크인가, 볼인가, 직구인가, 변화구인가, 변화구라면 어떤 구종인가, 스피드는, 초속은, 종속은, 어떤 볼카운트, 주자 상황에서 던졌나, 오늘 몇 번째 던진 공인가, 어떤 타자를 상대로 던진 것인가 등은 기본 중에 기본이다. 프로야구단의 코칭스태프와 자체 기록원들은 훨씬 세밀한 부분까지 관찰한다, 투수가 글러브에 손을 넣어 공을 잡는 시간과 볼 배합의 상관관계, 와인드업 때 올리는 발의 각도, 팔의 위치에 따른 공의 높낮이와 좌우 폭, 주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공 스피드와 투구 패턴 변화 등 이루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어디 그뿐인가. 그 공 1개가 타자와 만났을 때 파생되는 기록 또한 수없이 많다. 삼진을 잡았나, 안타를 맞았나, 볼넷을 내줬나는 기본이다. 타자가 그냥 선 채로 있었거나 헛스윙을 했다면 포수의 리드가 좋았는지, 투수의 구위가 좋았는지, 아웃코너로 빠지는 슬라이더가 오늘은 제대로 먹히는지, 이 타자를 잡는 결정구는 체인지업이 낫겠다는 판단까지 데이터가 굴비 엮듯이 줄줄이 나온다.

▶여기까지 얘기하고 보니 아차 하는 마음이 든다. 이제 막 재미를 붙이려는 초보 팬들을 질리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올해 고희를 맞는 SK 김성근 감독은 숫자에 강해서, 컴퓨터를 잘 해서 야신(野神)이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김 감독은 기록원이 전달해주는 데이터는 꼼꼼하게 읽지만 컴퓨터와는 담을 쌓고 산다. 다만 야구를 향한 지독한 열정과 오랜 현장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승부사의 감각, 선수의 현재 상태를 꿰뚫어 보는 눈이 탁월할 뿐이다.

▶체육 기자도 마찬가지다. 굳이 기록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 수많은 숫자의 홍수를 제대로 추려내고 정리해서 독자들의 식탁에 먹기 좋게 올려주는 이야기꾼의 역할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따라서 체육기자는 냉철한 머리와 따뜻한 가슴, 이야기를 풀어내는 손맛을 두루 갖춰야 한다. 기자이면서 프로듀서이고, 작가여야 하는 1인 3역이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디지털로 표시되는 숫자의 이면에는 선수들의 드라마 같은 삶과 승부가 있다.

▶기자 초년병 시절인 1990년 해태 한대화(0.3349)와 빙그레 이강돈(0.3348)의 타격왕 경쟁은 최고의 드라마였다. 이강돈은 1모(0.0001) 차로 타이틀의 주인이 갈린, 그 피 말리는 승부에서 시즌 마지막 타석까지 시원하게 방망이를 휘둘러댔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 개막전에서 삼성 이선희가 던지고 MBC 이종도가 친 공과,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역시 이선희가 던지고 OB 김유동이 친 공은 한 시즌을 관통한 화두였다. 첫 번째 공은 진기록 중의 진기록인 연장 끝내기 만루홈런이 됐고, 두 번째 공은 한국시리즈 우승팀을 결정짓는 만루 홈런이 됐다. 삼성은 이후 20년 동안 한국시리즈 징크스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당대 최고 좌완이었던 이선희는 비운의 투수로 시름시름 앓다가 팬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숫자가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강산이 두 번 변할 동안 야구를 취재하면서 그 누구도 다뤄보지 않은 기록을 정리해 독자들에게 짠하고 선보이는 일을 자주 해봤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런 점에서 오늘은 지장(智將)과 덕장(德將)의 차이점을 수치로 한 번 확인해보고자 한다. 예전에 김영덕, 김성근으로 대표되는 재일교포 출신 지장(智將)들은 선수들의 능력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내 성적을 올린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래서 이들이 떠나고 난 후엔 팀이 초토화된다는 것이었다. 반면 토종 감독이 주류를 이루는 덕장(德將)들은 그들이 지휘봉을 내려놓으면 오히려 더 좋은 팀이 된다는 가설이다.

▶우선 질문 하나. 지난해까지 한국 프로야구가 29시즌을 치르는 동안 한 번이라도 우승 헹가래를 받아본 감독은 몇 명일까. 혼자서 V10을 달성한 김응용(해태 9회, 삼성 1회)이 있으니 일단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찾아보니 11명이다. 성씨별 편중 현상도 심하다. 김응용, 김재박(현대 4회), 김성근(SK 3회), 김인식(OB 두산 각 1회), 김영덕(OB 삼성 각 1회) 등 5명의 김 씨가 전체의 72.4%인 21개의 우승컵을 가져갔다. 가히 김 씨 천하라 할 만하다. 나머지 성씨 중에서는 강병철(롯데), 선동열(삼성)이 2번씩, 백인천(LG), 이광환(LG), 이희수(한화), 조범현(KIA)이 한 번씩 우승의 감격을 맛봤다.

▶일단 이 11명의 감독을 대상으로 열심히 뒷조사를 해봤다. 놀랍게도 예전에 들었던 그 가설은 최소한 덕장 부분에서 유효했다. 대표적인 덕장으로 인정받는 강병철은 그가 있다 떠난 팀마다 하나같이 이듬해 성적이 올랐다. 전년도 7위였던 한화는 1999년 우승했고, 6위였던 SK는 2003년 한국시리즈에 올랐다. 만년 꼴찌 롯데는 2008년 8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김인식이 이끌던 두산도 7위에서 2004년 3위로 직행한 뒤 지금까지 강팀으로 군림하고 있다. 이광환의 LG는 7위에서 1997년 2위로, 한화는 7위에서 2003년 5위로 뛰어올랐다. 용장(勇將)으로 분류되는 김응용의 삼성도 2위에서 2005년 선동열이 인수하면서 두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안았다.

▶그렇다면 김영덕 김성근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이들이 맡았던 팀의 성적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김영덕의 OB는 전년도 5위에서 1984년 3위로, 빙그레도 5위에서 1994년 3위로 올랐다. 김성근의 삼성도 4위에서 1993년 2위로 두 계단 올라갔다. 김성근이 맡은 LG가 이듬해인 2003년 순위가 떨어진 게 유일했다. 2002년 LG는 정규시즌에서 4위를 했지만 현대와 KIA를 꺾고 한국시리즈까지 올라 삼성에 아쉽게 졌다. 야신(野神)이란 별명은 이때 김응용이 붙여준 것이다. 하지만 LG는 평소 구단과 자주 트러블을 일으키는 김성근을 해임했고 이듬해 6위로 성적이 곤두박질쳤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장환수 스포츠레저부장
▶지장들이 떠난 팀의 성적도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게다가 이미 정평이 나 있듯이 지장인 두 김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팀은 하나같이 성적이 치솟았다. 반면 떠난 후에 성적이 오르긴 했지만, 덕장들이 맡은 팀은 별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덕장을 폄훼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하지만 당신이 구단주라면 누구를 택하겠는가.

스포츠레저부장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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