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커튼을 쳐서 창문과 뒤쪽 벽을 가리자 연습실은 이내 무대로 변신했다. 조명과 음향시설도 실제 공연장을 방불케했다. “지금부터 막(幕) 올라갑니다, 원 투 스리…!” 홍승엽 예술감독의 나직한 큐 사인에 경쾌한 맘보 음악이 울리면서 춤이 시작됐다.
1일 오후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국립현대무용단 연습실. 다음 달 5∼7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열릴 무용단 정기공연 ‘수상한 파라다이스’의 연습이 한창이었다. 안무는 이미 한 달 전에 완성됐다. 매일 한 번씩 작품을 반복 연습하며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
‘수상한 파라다이스’는 훼손되지 않은 자연의 ‘천국’이면서 전쟁의 긴장감이 남아 있는 비무장지대(DMZ)를 모티브로 했다. 창단 공연 ‘블랙박스’가 홍 감독의 기존 작품들을 재구성한 것이므로 이 작품은 사실상 현대무용단에서 홍 감독의 첫 신작이다.
“지금까지는 개인의 정체성에 관한 작품을 해왔다면 국립단체에서 안무를 하게 된 지금은 사회의 정체성을 담은, 다수가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번 작품은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을 위한 진혼무입니다.”(홍 감독)
경쾌한 맘보로 출발한 작품은 곧 비장한 음악과 함께 정반대 분위기로 바뀌었다. 출연진 17명 중 남자 무용수가 8명. 무용수들의 근력을 필요로 하거나 신체 접촉이 많은 강렬한 동작이 주를 이뤘다. 최근 촬영해 공개된 공연 포스터에는 남자 무용수들이 둥근 공처럼 뭉쳐 있는 이미지가 등장했다.
4월 오디션에서 82명이 지원해 25명이 뽑혔지만 4명은 개인사정이나 부상 때문에 중도에 관뒀다. 이들은 평일 매일 출퇴근하며 하루 6시간씩 연습에 매진 중이다.
창단 공연 무대에 섰던 무용수 김영재 씨(34)는 “동작은 다 익혔지만 그 안에 디테일과 감정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무용수에게는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다. 이미 완성된 ‘블랙박스’ 때보다 더 많이 생각하고 더 풍부한 감정을 끌어내게 된다”고 말했다. 무용수 이윤희 씨(26)는 “감독님이 동작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설명해주시기 때문에 춤을 추기가 쉽다”고 말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1월 창단 공연 당시 전석 1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티켓 가격과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추가 공연마저 전석이 매진됐다. 이번 공연도 1층 1만6000원, 2층 1만 원이다. 무용단 측은 “입소문만으로 벌써 표가 20% 가까이 팔려나갔다”고 밝혔다.
홍 감독은 “‘블랙박스’를 공연한 무용수들을 다시 캐스팅한 경우가 많다. 오디션을 거치는 방식은 유지하되 이전에 실력이 검증된 무용수는 재기용하는 등 무용단 운영 방식도 계속 진화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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