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장희의 스케치 여행]경북 영주 ‘선비촌’

  • Array
  • 입력 2011년 7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소수서원 옆 글읽는 마을로 유명했던 곳

내가 마지막으로 반딧불이를 본 것이 언제였을까? 자려고 불을 끄자 창 근처에서 빛을 발하는 반딧불이 몇 마리가 바로 눈에 들어왔다. 마침 잠이 잘 오지 않는지 아이가 벌떡 일어나 창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창에 코를 바짝 붙이고 앉아 벌레를 쳐다보았다. 반딧불이는 어떤 신호를 보내는 듯 끊임없이 반짝거렸다. 아이는 반딧불이의 신호가 무슨 뜻인지 알기라도 하듯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들이 숲의 어둠 속으로 날아가기 전까지. 그렇게 고택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있었다.

○ 임금이 이름을 하사한 소수서원

오랜만에 가족을 모두 이끌고 스케치 여행을 떠났다. 아내와 네 살짜리 딸, 두 살배기 막내를 데리고서였다. 장마철 한가운데 다행히도 갠 날씨가 우리를 반겨줬다.

여행지는 경북 영주 ‘선비촌’. 보통 영주 하면 부석사를 먼저 떠올리지만, 소수서원(紹修書院)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곳이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하사한 ‘국가공인 사립 교육기관’이었다. 선비촌은 소수서원 옆에 있는 전통 민속마을이다. 조선시대 선비와 서민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돼 2004년 문을 열었다.

선비는 학문(유학)을 닦는 사람을 뜻하며, ‘덕이 있고 고결한 인품을 가진 사람’이란 의미도 있다. 선비촌이 있는 영주시 순흥면은 선비들의 글 읽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는, 문풍(文風)이 드높았던 고장이다.

1542년(중종37년) 풍기군수로 있던 주세붕이 우리나라 성리학의 시조인 고려 때 유학자 안향 선생을 모시기 위해 그의 연고지에 사묘(祠廟)를 세웠다. 후에 유생들을 가르치면서 세운 백운동서원이 원래 이름이다. 1550년(명종5년)에는 퇴계 이황이 풍기군수로 있으면서 나라에 건의해 사액(賜額·임금이 사당과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 새긴 편액을 내리던 일)을 받게 됐다. 최초의 국가공인 사립 교육기관인 소수서원의 탄생이었다.

○ 창을 넘어오는 초록빛 바람

선비촌은 소수서원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두 곳은 같은 입장권으로 둘러볼 수 있다.

선비촌은 보존 가치가 높은 영주 지역 선비들의 고택을 모아 재현해 놓은 곳이다. 고택들은 그곳에 살았던 선비들의 행적에 따라 분류돼 있다. △스스로를 갈고 닦은 후 다른 사람을 이끈 지도자의 집은 ‘수신제가(修身齊家)’ △중앙정계에 진출한 선비들의 집에는 ‘입신양명(立身揚名) △일신의 안위를 고려하지 않고 잘못된 것을 서슴없이 비판했던 사람들의 집에는 거무구안(居無求安·거처함에 있어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다)으로 분류가 나뉜다.

한지공예, 천연염색, 두부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체험이 있는데, 그중 고택에서의 하룻밤은 아파트의 삶에 익숙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새로운 체험을 선사해 준다. 좁은 방문, 귀찮기만 한 문턱, 높은 대청마루, 멀리 떨어진 화장실 등 많은 것이 낯설다. 하지만 한여름 대청마루에 앉아 창을 넘어오는 초록빛 바람을 맞고 있노라면 아파트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감동이 찾아오고야 만다. 영주 선비촌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2011년 한국관광의 별’ 선정에서 체험형 숙박시설 부문 후보 3곳 중 하나로 뽑히기도 했다.

다음 날 새벽, 나는 살며시 잠자리를 빠져나왔다. 가족들은 모두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낯선 곳의 아침을 경험해보는 일은 여행 중 맛보는 나의 오랜 습관 중 하나다. 선비촌과 소수서원을 가르는 죽계천을 따라 걸었다. 퇴계가 이름을 지은 ‘취한대(翠寒臺)’란 정자에 걸터앉아 소수서원을 바라봤다. 그 자리에 있던 고찰(古刹·신라시대에 창건된 숙수사)은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로 돌아가던 해인 1457년(세조3년) 정축지변(丁丑之變)으로 소실됐다. 이제는 당간지주(법회 때 깃발을 다는 당간 좌우에 세운 기둥)와 더불어 울창한 솔밭만 남아 있을 뿐이다. 잠시 후 햇빛이 세상을 채우기 시작했다. 먼 옛적부터 변함없었을 그 햇살은 주변을 뒤덮은 아름드리 적송 숲 사이에 멋들어진 그림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대원군의 서원철폐도 버티어낸 소수서원이 선명한 모습으로 눈부신 여명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