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폭염 속에 신안군 증도에서 목포까지 90km를 달려온지라 피곤이 극에 달해 아직 꿀 같은 단잠에 빠져있는데 주변이 몹시도 소란스럽다. 여러 명의 발소리, 두런두런 목소리….
잘 떠지지 않는 눈꺼풀을 힘겹게 열고 시계를 보니 아직 오전 6시도 안된 이른 시각. 다시 잠을 청해보았으나 이번엔 머리맡에서 뭔가 커다란 짐승이 킁킁거리는 소리까지 들린다.
화들짝 놀라 일어나보니 송아지만한 리트리버 한 마리가, 맨바닥에 있는 자루(침낭) 속에서 자고 있는 인간이 신기한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켜보고 있다.
주위를 둘러보니 마리나는 조깅하는 사람, 개를 데리고 나와 산책하는 사람들로 이미 깨어나 있었다.
어느 틈에 일어났는지 홍석민과 김은광은 벌써 스토브를 피워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그때서야 낮에는 햇볕이 너무 뜨거우니 오전에 가능하면 일찍 출발해 시원할 때 주행거리를 늘리기로 했던 전날 밤의 약속이 생각났다.
아침 메뉴는 미리 준비해온 누룽지를 끓인 누룽지탕. 잠자리를 걷고 야영짐을 정리하는 동안 마리나 벤치 위에 아침 밥상이 차려졌다.
반찬은 어제 저녁 목포시장 뒤편 백반골목 돌집 식당에서 얻어온 묵은지와 조기찌개다. 묵은지야 워낙 누룽지에 잘 어울리지만 비린 조기찌개는 가뜩이나 입맛 없는 아침거리로 도무지 생뚱맞다.
하지만 그것은 맛이라면 전국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남도의 맛을 무시한 선입견에 불과했다. 찌개냄비를 향하는 숟가락질이 처음엔 띄엄띄엄했으나 일단 맛을 보고나자 경쟁이 치열해져 불과 5분여 만에 냄비가 바닥을 드러내버린 것이다.
한 뼘도 안 되는 작은 조기들을 통째로 넣고 호박, 양파, 무, 풋고추를 곁들여 짭짤하게 끓여낸 찌개는 누룽지와 절묘하게 궁합이 맞았는데 특히 전날 땀을 많이 흘리고 칼로리 소모가 심했던 우리들의 입맛에 착착 감긴다.
● 넘실대는 해남 밀밭과 보리밭의 숨막히는 파노라마
아침을 든든히 먹은 자전거식객들은 목포의 상쾌한 아침 공기를 뚫고 해남을 향해 일제히 페달링을 시작했다.
삼호대교를 통해 영산강을 건넌 뒤 대불산업단지를 관통하고 영암호의 둑방길 금호방조제를 단숨에 넘어 해남땅에 들어섰을 때 태양은 또 다시 높게 떠 아스팔트 도로를 달군다.
806번 지방도로를 통해 진입한 해남은 구릉이 발달한 지형이 무척이나 이국적이다. 그 흔한 동산 하나 없이 굼실굼실 펼쳐진 구릉과 드넓은 평야가 우선 시각적으로 시원스럽다.
게다가 도시와는 달리 아파트는 물론 시야를 가리는 2층 건물조차 없이 야트막한 농가주택들이 전부여서 어느 방향으로 눈을 돌려도 정답고 순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우리의 자전거는 그 풍경 사이로 빨려 들어간다.
산이면에 들어서면서 더욱 독특한 파노라마가 연출됐는데 그 파노라마의 주인공은 밀밭과 보리밭이었다.
언 땅에서 겨울 이겨낸 밀과 보리 잘 익어 금빛 물결로 일렁거리고 동산 하나 없이 납작 엎드린 평야 자전거 행렬 풍경 속으로 빨려드는데
‘밀과 보리가 자란 것은/누구든지 알지요/농부가 씨를 뿌려/흙으로 덮은 후에/발로 밟아 손뼉 치며/사방을 둘러보지요/친구를 기다려/친구를 기다려/한 사람만 나오세요/나와 같이 춤추세…’ <동요-‘밀과 보리가 자라네’>
언덕의 부드러운 스카이라인을 따라 추수철을 맞은 밀과 보리가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이는지라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이 마치 잔잔한 금빛 바다를 헤쳐 나가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흥얼흥얼 노래가 나온다.
아! 봄에 이 언덕이 푸르렀을 때, 그 때는 또 얼마나 더 아름다웠을까?
진산리에서 콤바인으로 밀을 베어들이고 있는 농부를 만났다. 농부의 설명에 따르면 밀과 보리는 가을에 벼를 추수하고 난 뒤 파종되는데 언 땅에서 겨울을 이기고 이듬해 6월, 병충해가 시작되기 전에 수확한다. 때문에 밀농사, 보리농사는 제초제나 농약을 뿌릴 필요가 없는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 무공해 작물.
그러나 현실은 국내 밀 수요의 9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0.3%의 자급률을 3%로 끌어올리는 것이 우리 농촌의 1차 목표라는 아저씨의 설명이 왠지 쓸쓸하다.
● 한낮 라이딩으로 지친 몸 달래준 완도의 전복죽
언덕과 언덕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진 해남길은 자전거 변속기를 조작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유순하게 흘렀지만 바람 없는 6월 한낮의 태양이 작열하면서 시나브로 지쳐갔다.
각자 준비한 1리터들이 물통이 바닥나 근처 방앗간에서 물통을 다시 채웠으나 그마저 오전 11시가 되기 전에 다 마셔버렸다.
남도의 땡볕은 땀이 피부로 흘러내릴 여유도 허용치 않고 즉시 증발시켜버릴 만큼 혹독해 완도를 향해 달리는 길은 마치 사막을 횡단하는 것 같았다.
금송리. 온몸의 물기가 다 빠져나갈 것 같은 시점에 때맞춰 홍석민, 김은광으로 구성된 지원조가 도착했다. 지원조의 손에 들린 커다란 수박을 보는 순간 모두들 자전거를 집어던지고 모여든다.
힘든 여정을 이어가다보면 자주 행복이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나무 그늘에서 수통의 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 구멍가게에서 ‘아이스께끼’를 사먹을 때 우리는 아이처럼 행복해하곤 했는데 이날 마을회관 앞에 퍼질러 앉아 수박을 쪼개먹으며 느낀 행복감은 덥고 갈증이 극심했던 만큼 여느 때보다 농도가 짙었다.
수박을 먹으며 지도를 살펴보니 이제 해남 땅끝이 코 앞. 이곳부터 완도를 거쳐 동쪽으로 강진, 장흥, 보성으로 복잡하게 이어진 해안선을 들여다보며 우리는 자전거로 꽤 멀리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점심 식사는 완도에서 광어-전복 양식장을 하고 있는 허영만 대장의 지인댁으로 초대받았다. 우리의 도착에 때맞춰 준비된 앉은뱅이 밥상에는 광어회와 전복회 외에 낙지볶음, 큰멸치조림 등 남도의 미각이 즐비했지만 그중에서도 압권은 전복죽이었다.
쌀 반, 전복 반에 내장을 함께 넣고 푹 끓인 전복죽은 더위와 오랜 자전거 라이딩에 지친 나그네들에게 음식이 아니라 일종의 위로이며, 다독거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