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헛하다. 부분 부분을 놓고 보면 세련됐는데 전체를 놓고 보면 마음을 잡아끄는 뭔가가 부족하다. 8일부터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초연 중인 ‘화선, 김홍도’에서 느낀 아쉬움이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기대를 모았다. ‘벽속의 요정’과 ‘열하일기만보’, ‘3월의 눈’으로 찰떡궁합을 과시한 배삼식 작가와 국립극단 예술감독 손진책 씨가 다시 호흡을 맞췄다. 여기에 국립극장 소속 국악관현악단, 무용단, 창극단 3단체가 역량을 결집했다. 2000년 발표된 ‘우루왕’ 이후 11년만의 총체극이다.
대본은 섬세하면서도 날렵했다. 두 명의 선비가 김홍도의 그림 속으로 들어가 김홍도를 찾아 나선다는 이야기 구조는 매월당의 전기(專奇)소설에서 따왔다. 그들이 나누는 대사는 연암 박지원과 그가 이끌던 백탑파의 문장부터 한문학에 정통했던 현대시인 김수영의 시 ‘사랑’을 넘나드는 위트가 넘친다.
무대는 이중의 반투명막을 활용해 ‘추성부도’를 필두로 ‘씨름’ ‘무동’ 등 단원 김홍도의 산수화와 풍속화를 차례로 불러냈다. 2007년 대한민국 작곡상을 수상한 김대성 씨가 작곡한 음악은 흘러가는 그림에 맞춰 정가부터 범패, 민요까지 다양한 국악 장르를 넘나들었다. 국수호 씨의 안무는 그 그림 속 등장인물을 고스란히 현실로 불러내는 극사실주의적 춤사위를 펼쳐냈다.
하지만 한국을 대표할 ‘국가브랜드 공연’이란 타이틀 때문일까. 아니면 가무악(歌舞樂)을 하나로 녹여내는 총체극이란 형식 때문일까. 이 작품은 단원의 예술세계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아무것도 제시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한다.
이 작품에 분명 김홍도가 등장한다. 그것도 말년의 노화가로, 표암 강세황 아래서 그림을 배우는 화동(畵童)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하지만 제작진이 정작 보여주고 싶어 하는 김홍도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는 그냥 속세를 초탈한 신선, 그래서 감히 한마디를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존재로만 그려진다. 한마디로 그림뿐 아니라 세상만사 다 꿰고 있는 도사다. 그래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화선(畵仙)이란 제목에 취해 정작 김홍도라는 인물의 형상화에는 실패한 것이다.
물론 달을 직접 그리지 않고도 달빛에 물든 구름만으로 달을 형상화하는 동양화의 홍운탁월(烘雲托月)이란 기법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작품 속 단원이나 그의 예술세계에 대한 통찰이 평면적이다. 단원의 화첩 속 기행을 마친 두 선비의 깨달음, ‘세상 같은 그림, 그림 같은 세상’은 단원의 그림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그림에 적용할 수 있는 범용한 것이다.
자칫 전시성 공연으로 흘러가기 쉬운 총체극이란 양식을 돌파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열정(파토스)이다. ‘화선, 김홍도’의 헛헛함은 바로 그 열정의 부재와 맞물려 있다. ‘단원, 당신은 누구인가’나 ‘단원의 그림이 왜 지금 우리에게 소중한가’ 같은 뜨거운 질문을 빼먹은 채 ‘붓 끝에 낚아 올린 한 세상 바람’ 같은 선문답으로 너무 쉽게 달려가 버렸다. 그래서 이야기와 음악 춤, 그리고 그림을 하나로 꿸 무명실까지 놓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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