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의 소설 ‘허생전’에서 효종의 북벌정책을 보필해온 이완(1602∼1674)은 허생을 만나 북벌의 묘책을 물었다. 허생은 ‘양반 자제 중 유능한 인재를 뽑아 머리를 깎고 오랑캐 옷을 입혀 청나라를 염탐하게 하라’ 등 세 가지 안을 제시했다. 전형적 사대부인 이완은 이를 모두 거절했다가 뒤늦게 허생의 가치를 깨닫고 그를 찾아가지만, 이미 허생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때 이완과 허생이 손을 잡고 북벌에 참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궁금했어요. 허생은 현실상 북벌이 쉽지 않지만, 그렇다고 청에 종속돼서는 안 된다고 믿었어요. 명분과 실리의 공존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던 인물이죠. 이를 바탕으로 허생전 이후의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습니다.”
1993년 ‘베니스의 개성상인’을 발표하면서 색다른 역사적 상상력으로 주목받은 소설가 오세영 씨(57)가 신간 ‘북벌-1659년 5월 4일의 비밀’(시아)로 돌아왔다. 1659년 5월 4일은 효종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날. 이 책은 효종과 훈련대장 이완 등으로 대표되는 북벌파, 북벌이라는 명분만 필요했던 송시열 등 서인, 소현세자를 따랐던 친청(親淸)파 등이 북벌을 둘러싸고 어떻게 힘겨루기를 했는지 치밀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북벌이 왜 미완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면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펼친다. ‘북벌파가 옳다’ 내지 ‘친청파가 현실을 제대로 파악했다’ 등 단순히 선악의 관점은 아니다.
오 씨는 “세 개의 세력 중 어느 하나가 옳고, 다른 것들은 그르다고 보기는 힘들다. 모두 자신의 신념에 따라 최선을 다한 것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결과는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합니다. 청과 조선은 전쟁 없이 공존의 길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출정한 것보다 더 좋은 성과를 거뒀지요. 물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독자의 몫이지만요.”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를 교묘하게 결합한 작품을 선보여온 오 씨는 “앞으로도 다른 사람이 잘 하지 않는 걸 다루겠다”고 했다. 특히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창작 설화에 관심이 많다. “고려시대에는 여성의 지위가 높았고, 남녀의 사랑도 자유로웠어요. 다양한 문물이 교류했고 눈이 파란 외국인들도 살았죠. 그만큼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도 많아요. ‘K팝’을 뛰어넘는 ‘K스토리’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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