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과(科) 동물’을 앞세운 두 편의 창작 뮤비컬(영화에서 소재를 딴 뮤지컬)이 나란히 공연 중이다. 귀여니의 인터넷 동명소설(2003년)을 바탕으로 2004년 영화화됐던 ‘늑대의 유혹’과 역시 동명의 할리우드 영화(2000년)의 판권을 사들여 국내에서 뮤지컬로 자체 제작한 ‘코요테 어글리’다.
두 작품은 늑대와 코요테라는 갯과 동물의 이름이 들어간 뮤비컬이라는 점 말고도 많은 공통점을 지닌다. 우선 젊고, 잘생기고, 늘씬한 한류스타를 앞세웠다. ‘늑대…’는 려욱(슈퍼주니어), 박형식(제국의 아이들), 린아(천상지희), 임정희 등 가수 출신 한류스타와 김산호 김형민 성두섭 등 키 180cm가 넘는 남자배우들을 앞세웠다. ‘코요테…’는 루나(f(x)), 장희영(가비엔제이), DK와 윤혁(디셈버), 솔로가수 이현 등 역시 비주얼이 뛰어난 가수 출신 배우들과 키 170cm가 넘는 여배우들을 내세웠다.
또 두 작품은 K-Pop 뮤지컬의 제작 공식에 충실하다. 음악의 유기적 통일성을 기하기보다는 장면 장면에 충실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분할 배치했다. ‘늑대…’는 K-Pop 히트곡으로 무장했다. S.E.S.의 ‘Oh My Love’부터 2PM의 ‘Heart Beat’, 소녀시대의 ‘Run Devil Run’, 엉덩이춤으로 유명한 카라의 ‘미스터’, 샤이니의 ‘루시퍼’ 같은 익숙한 곡들을 이야기에 녹여 넣었다. ‘코요테…’는 영화 주제곡 ‘캔트 파이트 더 문라이트(Can't Fight the Moonlight)’ 말고도 ‘아이 윌 서바이브(I Will Survive)’와 ‘원 웨이 오어 어나더(One Way or Another)’ 등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에 실린 유명 댄스곡을 차용했다.
뮤지컬에서 이렇게 음악적 통일성이 없는 기존 곡들을 엮어서 만든 뮤지컬을 컴필레이션 뮤지컬 또는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이 스웨덴 출신 4인조 그룹 아바의 히트곡을 극 속에 녹여 넣은 ‘맘마미아!’다.
원래 뮤지컬은 다양한 주제곡이 기승전결의 완결된 구조로 이뤄진다. 하지만 한국에서 제작되는 많은 뮤지컬은 창작곡을 쓰더라도 노래들 간의 유기적 통일성이 떨어진다. 그 대신 장면 장면에 충실하기 때문에 마치 음악장르가 전혀 다른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를 연결시켜 놓은 듯한 효과를 낳는다. 한마디로 컴필레이션 뮤지컬의 느낌이 강하다.
기자는 이런 한국뮤지컬의 독특함이 한국가요의 특징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에서 ‘K-pop 뮤지컬’이라고 칭해왔다. 콘서트 현장분위기를 내기 위해 현란한 조명을 많이 쓰는 한편 닭살 돋는 가사용 대사가 많다는 점도 K-Pop 뮤지컬의 특징인데 두 작품이야말로 이를 제대로 구현하고 있다.
차이도 존재한다. ‘늑대…’가 남성미에 대한 순정만화 코드를 겨냥했다면 ‘코요테…’는 성적 매력이 넘치면서도 순수한 여성에 대한 남성적 판타지를 겨냥한다. 하지만 결정적 차이는 따로 있다. ‘늑대…’가 원작 이야기와 노래를 뒤틀어 담아낸 반면 ‘코요테…’는 원작의 분위기와 느낌에 충실하다는 점이다.
결과는 덩치가 더 큰 늑대의 판정승이다. 원작의 쌈짱 꽃미남들을 ‘왕자병’에 걸린 철부지로 패러디하거나 백지영이 부른 ‘내 귀에 캔디’ 같은 여성적 노래를 조직폭력배들의 합창곡으로 바꿔치는 재기발랄함으로 관객의 익숙한 기대를 유쾌하게 뒤집어버리는 재미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K-pop 뮤지컬은 그렇게 또 한 번 진화 중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i: 늑대의 유혹’은 10월 3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아티움 현대아트홀. 3만∼7만 원. 02-738-8289 ‘코요테 어글리’는 8월 15일까지 서울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5만∼9만원. 1577-18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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