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이 답한다]Q: 양심과 이성에 반하는 軍 가혹행위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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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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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폐쇄 조직 속에 양심 쉽게 무너져

《최근 해병대 총기 사건으로 군대 내 가혹행위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왜 잊을 만하면 ‘왕따’나 구타 같은 조직 내 가혹행위가 불거지는가? 인간은 양심과 이성을 가진 존재가 아닌가? (gala****)》
말레이 반도의 세마이족은 그들 언어에 ‘살인’이란 단어가 없고, ‘때리다’가 가장 공격적인 말일 정도로 비폭력적 문화를 갖고 있었다. 그런데 1950년대 영국 정부가 공산 게릴라와 전투를 위해 세마이족 남자들을 징집하자 그들은 광기에 휩싸여 적을 죽였고 물건을 약탈하는 것을 즐겼다. 이를 보면 공격성이란 타고난 것이고, 문화와 사회적 학습이 공격성을 억제하고 다듬는 기능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회적 역할이 공격성을 표현하는 장을 마련해 주기도 한다. 필립 짐바르도의 ‘간수와 죄수 역할 실험’에서 간수 그룹은 죄수 그룹을 가혹하게 다뤄 계획보다 일찍 실험을 끝내야 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군대 내 가혹행위는 인간 본성의 다른 측면인 양심과 죄책감에 의해 제어될 수 없을까. 여기에는 밀그램의 복종실험이 답을 한다. 건너편 방의 사람에게 전기충격을 가할 것이라고 실험자에게 알려주고 옆에서 권위적 인물이 충격의 강도를 높이라고 지시한다. 그리고 멈춰야겠다고 여겨질 때 멈추라고 했다. 30%의 실험자가 ‘더는 못 하겠다’는 불복종의 의사를 보이지 않고 최고 단계까지 충격의 강도를 올렸다.

개인의 ‘브레이크’는 권위 앞에서는 쉽사리 무력해진다. 조직에 속한 구성원은 개인의 판단을 포기하고 조직문화에 더 쉽게 복속한다. 이에 대해 1차 세계대전의 잔혹한 참상을 지켜본 프로이트는 1921년에 저술한 ‘집단심리와 자아의 분석’에서 구성원 개인의 자아이상을 포함한 초(超)자아를 리더나 조직의 그것으로 동일시하고 대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때 개인의 생각이나 판단은 더 힘을 갖지 못하고, 조직 자체의 윤리나 규칙이 일차적 역할을 한다. 그걸 받아들이면 혼자일 때는 하찮은 존재였던 자신이 강한 집단 안에서 그만큼의 ‘전능’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이 폐쇄적일수록 강하게 발생한다. 그 안에서 강한 결속력이 유지되고, 구성원들은 심리적 안정감을 갖는다. 아프리카의 10대 소년병들이 납치된 지 몇 달 만에 철저히 조직에 세뇌돼 잔학한 살인을 일삼는 것은 타고난 본성 때문만은 아니다.

그 결속력을 유지하는 데 또 하나의 힘은 증오다. 증오를 함께 표현하면 구성원의 심리적 통일감은 공고해진다. 외부에 증오의 대상이 없으면 내부로 눈을 돌린다. 조직에 누가 된다고 여겨지는 희생자를 찾아 공격한다. 조직 내에서 이는 구성원의 결속을 유지하고 조직을 공고히 하기 위한, 불가피한 일로 간주된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신경정신과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신경정신과
구성원들은 짐바르도의 실험에서처럼 죄수복을 입은 자에게 서슴지 않고 가혹행위를 하고, 밀그램의 실험에서처럼 양심을 따르기보단 대다수가 최고조까지 공격성을 표출한다. 그리고 말한다. ‘관행이며, 군대문화의 특성으로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여기에 당한 만큼 갚는다는 ‘본전심리’가 가혹행위를 정당화시켜 주는 강력한 동인이 되면서 이런 일은 악순환을 반복한다. 가혹행위의 피해자였던 이병이 어느새 가해자가 되며 폭력을 합리화하는 이유다. 그 악순환을 깨는 길은 손해보고 공격성을 억제하는 선순환을 만드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용서야말로 가장 성숙한 복수라고 했다.

하지현 건국대 의대 교수 신경정신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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