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 6·25전쟁 메모리얼 추모벽 건립 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윌리엄 웨버 씨. 공수 낙하산부대 대위로 6·25전쟁에 참전했던 그는 북한군 수류탄에 오른쪽 팔과 다리를 잃었다. 뉴윈저=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한국전쟁이 끝난 지 58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참전 미군들의 사망 소식이 들립니다. 이들이 살아 있을 때 한국전쟁기념공원에 ‘추모의 벽’을 헌사하고 싶습니다.”
미국 워싱턴DC에서 100km가량 떨어진 메릴랜드 주 교외 뉴윈저라는 한적한 시골마을에 살고 있는 윌리엄 웨버 씨(85)는 18일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자마자 “죽기 전에 꼭 해야 할 숙원사업”이라며 자신이 직접 만든 ‘추모의 벽’ 조감도를 보여줬다. 한국전쟁참전용사기념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국에서 60세는 환갑으로 재탄생을 뜻하지 않느냐”며 “종전 60주년을 맞는 2013년 7월 27일에 추모의 벽을 완공해 생존 참전용사들에게 헌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15일 미 하원의 랠프 홀 의원(공화·텍사스) 등 민주당과 공화당 의원 5명이 발의한 한국전쟁기념공원 추모의 벽 건립 법안은 웨버 회장이 7년 동안 끈질기게 추진한 산물이다.
인터뷰 약속을 위해 집에 전화를 거니 ‘공수부대(Airborne)’라는 음성메시지부터 먼저 흘러나왔다. 메릴랜드 교외 집 앞에는 ‘독수리의 집(Eagle’s House)-웨버의 집(Weber’s House)’이라는 팻말이 걸려 있었다. 1950년 육군 187공수낙하산부대 대위로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한국 땅에 발을 디딘 그는 1951년 1월 중공군의 반격 당시 전략적 요충지인 강원 원주를 사수하는 전투에서 북한군이 던진 수류탄에 오른쪽 팔과 오른쪽 무릎 아래를 잃었다.
하지만 8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게 활기찼다. 그는 한 손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직접 기사를 작성하면서 ‘계간 공수부대’ 잡지를 펴내는 편집장도 맡고 있다.
―추모의 벽 건립 법안이 하원에서 발의됐는데…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제 발의된 단계다. 정전협정 체결일인 7월 27일 전후에 통과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부채상한 문제를 놓고 여야가 맞서고 있어 어떻게 될지 불투명하다. 메모리얼은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통과되기 전까지는 모든 게 조심스럽다.”
―기념공원(메모리얼)이 이미 있는데 왜 별도로 추모의 벽을 만드나.
“많은 미국인이 한국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 제2차 세계대전 메모리얼과 베트남전 메모리얼과 달리 한국전 메모리얼에는 전사자의 이름이 없다. 사람들이 ‘경치가 좋다’라고만 여길 뿐 한국전쟁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미군이 한국전에서 얼마나 죽었는지, 실종자와 포로는 얼마였는지 제대로 알려야 한다. 카투사와 유엔군도 마찬가지다.”
―왜 이제야 전사자 이름을 새기나.
“1986년 10월 미 의회가 한국전 메모리얼 건립을 승인하고 1995년 7월 정전 42주년 기념일에 한국전 메모리얼을 완공했다. 당시 추모의 벽에 전사자 이름을 새기려고 했지만 국립메모리얼위원회와 미술위원회에서 반대했다. 바로 옆 베트남전 메모리얼과 유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우리가 사망한 용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사자 이름을 새기기 위해 7년 동안 고군분투했다. 한국전에서 미군 전사자가 3만3000명이나 되고 한국군은 15만 명이 전사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미군 소속 한국군 카투사 전사자까지 포함시키기로 했는데….
“카투사는 미군 소속이다. 이들이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많은 미군이 희생됐을지 알 수 없다. 카투사의 공로를 인정하자는 취지다. 카투사협회에서도 한국전에서 카투사가 얼마나 죽었는지 모른다. 한국전에서 사망한 카투사가 8000명이나 된다. 젊은 한국인들이 미군 소속으로 함께 싸우다 죽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한국전쟁은 왜 잊혀진 전쟁으로 불리나.
“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얼마나 많은 미군이 한국에 갔으며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모른다. 2차대전 메모리얼은 자세히 관람해도 한국전 메모리얼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지금 있는 한국전 메모리얼만으론 한국전쟁의 의미를 잘 알 수 없다.”
―랠프 홀 의원 등 5명이 법안을 발의했다.
“2차대전 참전용사인 랠프 홀 의원을 의회에서 직접 만나 법안을 설명하고 부탁했다. 한국전 참전용사와 2차대전 참전용사 출신 의원과 공동 발의하겠다고 약속해서 법안이 위원회에 올려지고 정식 발의된 것이다. 한국전 참전용사인 샘 존슨과 찰스 랭걸 의원이 적극 나섰다.”
―법안이 통과되면 어떤 절차를 밟나.
“추모비건립위원회에서 어떤 디자인을 원하는지 물어올 것이다. 조감도는 이미 마련해놨다. 미술위원회와 공원관리국이 심의하고 같이 일하게 될 것이다. 자금도 모아야 한다.”
―돈은 얼마나 들고 어떻게 조달하나.
“700만∼800만 달러로 추정된다. 연방정부 자금이 부족하기 때문에 법안에서 기부로 자금을 모은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예 관심도 없고 일부 젊은 세대는 한국전 참전을 ‘(미국의) 실수’라고 부르기도 한다. 1200만 달러가 들어간 한국전 메모리얼을 만들 때 삼성과 현대, 기아차 등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이번에도 기업들이 적극 나서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는 “자유는 공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리고 싶다. 한국전쟁은 공산주의 퇴락의 시작이었지만 미국에서도 참전용사들이 잊혀지고 있다. 반면 한국인들은 미군의 희생을 잘 기억해주고 있다”며 한국민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한국전쟁에서 본 동족 살육의 장면이 너무 잔인해 지금도 기억하기 싫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 그는 “젊은 세대들이 비참했던 한국전쟁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 추모의 벽은 꼭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