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덕노의 음식이야기]<59>밴댕이회무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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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21일 03시 00분


‘썩어도 준치’보다 맛있다는 오뉴월 별미

‘밴댕이 소갈딱지’는 속 좁고 너그럽지 못한 사람을 흉보는 말이다. 밴댕이는 성질이 급해서 그물에 걸리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파르르 떨다가 육지에 닿기도 전에 죽는데 이 때문에 생긴 속담이다.

‘오뉴월 밴댕이’는 변변치 못하지만 때를 잘 만난 경우를 빗대는 말이다. 작고 볼품없는 생선이지만 음력 5월, 6월이 제철이라는 뜻에서 생긴 비유다.

예전 밴댕이는 젓갈로 담그거나 바닷가에 가야 맛볼 수 있었지만 요즘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다. 특히 밴댕이를 양배추 깻잎 초고추장과 함께 빨갛게 무친 회무침을 많이 먹는데 지금이 제철 밴댕이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시기다. 광해군 때 시인 이응희가 오뉴월 밴댕이 맛에 반해 옥담시집(玉潭詩集)에다 시 한 수를 남겼다.

‘계절이 단오절에 이르니/어선이 바닷가에 가득하다/밴댕이 어시장에 잔뜩 나오니/은빛 모습 마을을 뒤덮었다/상추쌈에 먹으면 맛이 으뜸이고/보리밥에 먹어도 맛이 달다/시골 농가에 이것이 없으면/생선 맛 아는 사람 몇이나 될까’

알고 보면 밴댕이는 보통 생선이 아니다. 지금은 주로 밴댕이 소갈딱지라는 불명예스러운 속담으로 기억되지만 예전에는 맛있는 생선으로 명성이 높았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남긴 준치보다도 더 맛있는 물고기로 대접받았을 정도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에 밴댕이는 탕과 구이도 맛있지만 회를 치면 시어보다 낫다며 젓갈로 담갔다가 겨울에 식초를 쳐서 먹어도 일품이라고 적었다. 시어는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준치, 또는 웅어를 뜻하는 단어이고 옛날 중국에서는 팔진미의 하나로 꼽았던 생선이다.

제철 밴댕이회가 그만큼 맛있다는 이야기인데 효자로 이름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전쟁 중에도 밴댕이젓을 챙겨 어머니에게 보냈을 정도다. 난중일기(亂中日記) 을미년(1592년) 5월 21일자 기록에 고향 집에 불이 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머니 안부를 몰라 답답하다. 전복과 밴댕이젓, 어란 몇 점을 어머니께 보냈다”고 적었다.

진미로 꼽히는 밴댕이였으니 조선시대에는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때문에 경기 안산에 밴댕이를 관리하는 관청인 소어소(蘇魚所)까지 설치했을 정도다. 소어는 밴댕이의 한자 이름으로 예전에는 안산 앞바다에서 잡힌 밴댕이가 지금은 개발로 없어진 사리포구로 들어와 한양으로 유통됐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밴댕이는 성질이 급해 잡히면 바로 죽는다. 게다가 더워지기 시작할 무렵인 음력 오뉴월에 한창 맛있는 생선이니 옛날에는 신선도 유지를 위해 무척 노력을 했다. 겨울에 캐낸 얼음을 동빙고, 서빙고에 보관했다가 여름에 꺼내 쓰던 조선시대에도 밴댕이는 요즘처럼 여름이면 얼음을 채워 신선한 상태를 유지했다.

정조 때 일성록(日省錄)에 한강에서 잡히는 웅어 저장소인 위어소(葦魚所)와 밴댕이 관리 관청인 소어소에서는 겨울에 별도로 얼음을 저장했다가 여름에 사용하기 때문에 생선이 부패할 염려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다른 생선은 여름이면 상해서 먹을 수 없으니 웅어와 밴댕이처럼 겨울에 별도로 보관용 얼음을 저장하자는 상소가 보인다.

궁궐의 음식재료 공급을 담당하는 관청인 사옹원에서도 오뉴월 밴댕이만큼은 귀한 얼음으로 신선도를 유지했을 정도로 특별대우를 했던 것이다.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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