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4월 부임한 롯데호텔서울 중식당 ‘도림’의 셰프, 피터 야오 씨는 재료의 겉과 속이 모두 잘 익게 하는 불조절의 ‘달인’으로 업계에 정평이 나 있다. 그는 “멋에 치중하지 않고 원재료의 풍미를 살린 건강한 요리를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변영욱기자 cut@donga.com
빠듯한 살림. 11남매의 남으로 태어난 소년은 열세 살 때부터 일을 해야 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호텔 식당에 심부름을 하러 갔고 그곳에서 한 주방장 아저씨를 만났다. 그를 아들처럼 예뻐하던 아저씨는 “셰프가 되면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돈까지 벌 수 있다”고 조언했고 이에 매력을 느낀 소년은 열여섯 살 되던 해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다. 그로부터 36년 후. 소년은 중년이 됐고 중화권을 떠나 서울에 닻을 내렸다. 올 4월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서울 중식당 ‘도림’에 영입된 홍콩 출신 셰프 피터 야오 씨(52)의 얘기다.
홍콩의 고급 유명 레스토랑인 ‘푹람문’ 조리장, 대만의 프라미스트랜스호텔 중식부문 총괄주방장 및 그랜드하얏트 부주방장, 상하이 그랜드하이엇호텔과 다롄 인터콘티넨털호텔 레스토랑 중식부문 총괄주방장 등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그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패셔너블한 도시에서 일해보고 싶어 서울을 택했다”고 말했다.
15일 ‘도림’에서 만난 그와 그의 요리는 묘하게 닮은 모습이었다. 구운 양갈비 위에 커리, 마늘 등 8종류의 향신료로 만든 소스를 뿌린 ‘로딩콩 소스를 곁들인 양갈비구이’는 양고기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는 담백함이 인상적이었다. 찐 메로에 피망 생강 마늘 양파 등으로 만든 양념과 굴소스를 섞은 ‘메로 생선찜’에서는 재료의 원래 맛을 최대한 살리려고 애쓴 셰프의 고집이 느껴졌다. 푸근하면서도 내공 있어 보이는 단단한 인상의 야오 씨는 “지나치게 멋을 내지 않고 집에서 먹는 것 같은 푸근함을 주는 것이 요리철학”이라고 소개했다.
“중화권에서 근무할 때부터 한국 손님들을 많이 접했습니다. 중화권 고객에 비해 짠 음식을 싫어하고 ‘웰빙’ 식단을 선호하시죠. 여기에 맞춰 최대한 건강한 요리를 만들려고 애썼습니다.”
그는 무려 90권의 요리책을 펴낸 저자로도 유명하다. 2001년부터 쓰기 시작했다는 요리책 리스트 가운데 ‘맛있는 김치를 만드는 9가지 기법 대공개’가 눈에 쏙 들어왔다. 한국식은 물론이고 일본식, 중국식 김치 등을 만드는 방법을 다룬 책이다.
“2003년쯤 펴낸 책인데 나오자마자 다 팔렸어요. 어렸을 때 할머니가 젓갈로 만드는 요리를 많이 만들어주셔서 젓갈에 관심이 많았고 그래서 이를 활용한 김치 요리책을 냈는데 마침 그때 대만 홍콩 등에서도 김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났거든요.”
(왼쪽부터)메로 생선찜, 랍스터 칠리소스, 로딩콩 소스를 곁들인 양갈비구이 그가 처음 한국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요리 때문이었다. 홍콩에서 일할 때 한국식 삼겹살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한국식 요리와 문화에 흥미를 갖게 된 것. 둘째 동생 역시 약 6년 전 서울로 와 현재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광둥식 레스토랑 ‘채운’의 셰프로 근무하고 있는 터라 한국은 그리 생경한 나라가 아니었다.
“아홉째 동생도 요리사의 길을 택했어요. 제가 대만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이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는데 아무래도 아버지가 요리를 잘하셔서 형제들이 영향을 받았나 봐요.”
‘도림’에서 그가 올 여름 선보이는 메뉴는 ‘스파이시 사천 디너’다. 망고소스를 곁들인 가리비찜과 칠리소스를 끼얹은 새우, 홍초와 고추기름을 섞은 ‘사천식 특선냉채’, 매콤하고 담백한 사천식 소스를 곁들인 ‘호박말이 관자와 전복요리’, 마늘 양파 커리가루를 함께 볶아 조린 ‘사천식 한우 안심’ 등 7개 코스로 구성된다.
대만에 있는 가족을 떠나 혼자 호텔에서 생활하는 그는 새로운 맛을 경험하느라 외로움을 느낄 틈도 없다고 말했다. 근무하지 않는 날에는 다른 호텔 중식당은 물론이고 남대문시장의 노천요리집, 줄 서야 겨우 먹을 수 있다는 전국의 맛집을 찾아다니면서 시장조사에 매달리고 있기 때문. 예리한 미각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껏 술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댄 적이 없다는 그는 “맛 개발에 집중해 보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건강한 요리를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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