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에서 살아남은 사람을 사망자로 처리해 전몰자 명단에 올린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상대로 합사(合祀) 폐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낸 한국인 강제징용 생존자와 유족이 패소했다. 일본 재판부가 멀쩡히 살아있는 사람을 사망자로 만들어 해마다 A급 전범과 합동 제사를 지내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대해 어떠한 시정조치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일본 도쿄지방재판소 민사합의14부는 21일 김희종 씨 등 한국인 10명이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제2차 대전 전몰희생자 합사폐지 등’에 관한 청구소송에서 “살아있는 줄 알면서 합사한 게 아니고, 생존 사실을 확인한 뒤 재빨리 사과했으며, 합사 사실을 유족 외 제3자에게는 공개하지 않았던 점을 고려할 때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은 인격권 침해라고 볼 수 없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또 재판부는 유족 의사를 묻지 않고 한국인을 일본 전몰자와 합사한 것은 인격적 이익을 침해한 것이라는 원고 주장에 대해 “다른 사람의 종교상 행위(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한 것을 의미)에 의해 자신의 평온함이 침해되고 불쾌하다고 해서 법적으로 구제하면 상대방의 종교 자유를 침해하게 된다”는 논리를 폈다.
한국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2007년 10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일본군에 강제 징용됐던 한국인 가운데 전사자로 잘못 처리돼 합사된 사람은 60명이다. 이 가운데 13명은 발표 당시 살아있었고, 47명은 제2차 대전 이후 사망했다. 김 씨 등은 2007년 야스쿠니 신사 측에 합사자 명부에서 이름을 빼줄 것을 요구했으나 신사 측은 “사망자의 이름이 올라있는 영새부(靈璽簿)는 신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떤 표기도 수정할 수 없다”고 버텼다. 이에 따라 김 씨 등 10명은 같은 해 2월 야스쿠니 신사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합사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날 판결에 대해 원고 측 일본인 변호사는 “종교의 자유만 내세우고 개인의 인격은 무시하는 최악의 판결”이라며 “일본이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부끄러운 판결”이라고 말했다. 원고 중 한 명인 태평양전쟁 피해자 보상추진협의회 이희자 대표는 “황당한 판결이다.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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