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와 차 한 잔]‘우리가 사랑한 1초들’ 펴낸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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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7월 30일 03시 00분


내 인생에 흐르는 1초… 1초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죠

“일단 너무 더웠어요. 기온이 종종 섭씨 50도까지도 치솟았거든요. 이를 물리치는 방법은 더위보다 더 강력한 에너지를 만나는 거였지요. 산티니케탄 사람들이 제겐 그런 에너지였어요. 그들을 보면서 내 인생의 1초, 1초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지 다시금 깨닫게 됐습니다.”

‘사평역에서’, ‘포구기행’의 곽재구 시인(57·사진)이 9년 만에 신작 에세이 ‘우리가 사랑한 1초들’(톨)을 펴냈다.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의 고향인 산티니케탄에서 540일간 머물면서 손이 가는 대로 적고 찍은 글과 사진들을 담았다.

순천대에서 시 창작을 강의하던 곽 시인은 2009년 7월 안식년을 맞아 무작정 인도로 떠났다. 타고르의 모국어인 벵골어를 익혀 그의 시편을 직접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하루 24시간, 8만6400초의 1초까지도 모조리 기억하고 싶던 스무 살 당시, 곽 시인은 타고르의 시편을 읽으며 작지만 솜사탕 같은 천국을 느꼈다고 했다. 그렇기에 이 여정은 그에게 오랫동안 품어온 소망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산티니케탄에서 만난 벵골 사람들의 삶은 타고르의 시와는 또 다른 질감으로 다가왔다. 그는 “자연 속에서 순박하게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은 시가 지니지 못한 생의 격(格)이 있었다”고 했다.

인도 아가씨 론디니와의 인연은 읽는 이의 마음마저 두근거리게 한다. 어느 날 골목길을 지나는데 낡은 ‘차이(차)’ 가게에서 한 아가씨가 그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다음 날 어제의 그 아가씨가 생각나 가게 안으로 들어갔더니, 해맑게 웃던 아가씨는 미리 끓여놓은 차가 아닌 새 차를 끓여줬다. 그가 내미는 찻값도 받지 않았다. 그날 밤 옥상에 올라가 별을 보던 그는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오래전 기억을 떠올렸다. 8년 전 이곳에 며칠 머물렀을 때 맨발로 혼자 서 있던 아이가 안쓰러워 신발값을 준 일이 있는데, 차이 가게의 아가씨가 바로 그 아이였던 것이다.

곽 시인은 “나는 벌써 잊어버렸는데, 아이는 자라서도 나를 잊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졌다. 환하게 웃는 론디니를 보니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말밖에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갈 때 론디니는 펑펑 울며 아쉬워했다고 한다.

책 중간 중간에는 곽 시인이 직접 번역한 타고르의 시 9편을 담았다. 제목이 예뻐 눈길이 갔던 작품들이다. 한편으로는 신분에 따른 차별과 빈곤으로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너무 아름답게만 그려낸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든다.

“저도 그 부분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이 책은 보편적인 인도 모습이 아니라 곽재구라는 시인이 만난 인도 풍경입니다. 그들은 지극히 가난했지만 누구도 가난에 대해 구차스러워하지 않았죠. 그들이 숭배하는 신만큼이나 선량했고 아름다웠고요. 제 눈엔 그게 진실이지요.”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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