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孫丑(공손추)·상’의 마지막 제9장의 맺음말이다. 맹자는 지식인이 정치 현실에 참여하는 방식과 관련해서 伯夷(백이)와 柳下惠(유하혜)의 사례를 들고, 그 둘 다 偏僻(편벽)한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君子不由란 덕을 쌓은 사람이라면 그 방식을 따라 나가 그들처럼 행동하지 않으리란 뜻이다.
백이는 惡人(악인)의 조정에 서서 악인과 더불어 말하게 되는 것을 꺼렸다. 심지어 향촌에서도 고을사람이 冠(관)을 제대로 쓰지 않고 있으면 자기를 더럽히지나 않을까 해서 허둥지둥 떠나갔다. 이런 식이었으므로 제후가 아무리 훌륭한 言辭(언사)로 招請(초청)한다고 해도 응하지 않았다.
유하혜는 더러운 군주라도 섬기고 작은 벼슬이라도 취직했다. 어떤 사람이 곁에서 웃옷 한쪽을 벗거나 몸을 다 드러내더라도 掛念(괘념)하지 않았다. 그래서 무례한 사람과도 함께 있으면서 함께 일을 했으며, 떠나려고 하다가도 그 사람이 挽留(만류)하면 그대로 머물렀다.
백이는 지나치게 潔白(결백)을 추구했다. 그렇기에 맹자는 그 태도를 隘(애)라고 평했다. 狹窄(협착·지나치게 좁음)했다는 말이다. 유하혜는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이었으므로, 옳은 상황이 아닌 줄 알더라도 조정에 나아갔다. 그렇기에 맹자는 그 태도를 不恭(불공)하다고 평했다. 簡慢(간만·간솔하고 오만함)했다는 말이다.
李滉(이황)은 李鼈(이별)의 六歌(육가)에 대해 玩世不恭(완세불공)의 뜻이 있다고 지적했다. 완세불공이란 세상을 冷笑(냉소)하고 ‘너는 너, 나는 나’의 태도를 짓는 것을 말한다. 이별은 무오사화 이후 황해도 평산의 옥계산에 살면서 사는 집을 藏六堂(장육당)이라 했다. 悠悠自適(유유자적)의 삶을 살았지만, 그의 ‘장육당육가’에는 울분이 담겨 있었다. 藏六이란 거북이 머리와 꼬리, 四肢(사지)를 갑 속에 감추듯이 온몸을 세상으로부터 감춘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眼耳鼻舌身意(안이비설신의)의 六識(육식)을 단속하는 것을 말한다. 사실 세상일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신만의 건전한 즐거움을 찾는 것은 좋다. 하지만 세상을 冷笑하는 것은 옳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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