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재현 기자의 망연자실]내게는 그대가 천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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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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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폴링 포 이브’
대본★★★★ 음악★★★☆ 연기★★★ 무대★★★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기독교 원죄론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관에 입각해 풀어낸 뮤지컬 ‘폴링 포 이브’에서 이브(이보람)가 아담(봉태규)에게 처음 입맞춤을 하고 있다. ㈜비오엠 제공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기독교 원죄론이 아니라 예수의 사랑관에 입각해 풀어낸 뮤지컬 ‘폴링 포 이브’에서 이브(이보람)가 아담(봉태규)에게 처음 입맞춤을 하고 있다. ㈜비오엠 제공
기독교적 세계관을 다룬 뮤지컬? 왠지 갓 쓰고 양복 입은 느낌을 받았다. 히브리 성경(구약성경) 창세기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폴링 포 이브’를 보기 전의 선입견이었다.

일말의 기대는 있었다. ‘아이 러브 유’ ‘톡식 히어로’ 등 뮤지컬로 국내에도 팬이 많은 데다 지난해 ‘멤피스’로 토니상을 거머쥔 조 디피에트로가 대본을 썼다는 점이다. 디피에트로 뮤지컬의 특징은 뻔해 보이는 이야기에 톡톡 튀는 아이디어라는 향신료를 첨가해 참신한 맛을 끌어낸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창작보다 각색의 귀재다.

‘폴링 포 이브’ 역시 이런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그는 ‘인류 최초의 사랑 이야기’로 홍보되는 너무도 익숙한 이야기를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재치 있게 요리했다.

뮤지컬의 전반부는 익숙한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캐릭터에서 도발적 변화를 줬다. 가장 도발적인 것은 하나님을 직접 등장시킨 것이다. 뮤지컬 속 하나님은 일주일 만에 완벽한 세상을 창조하고는 라스베이거스 쇼의 주인공처럼 “내가 나인 게 너무 좋아”라며 춤추고 노래한다. 게다가 남자(김대종 이재규)였다가 여자(류승주 문혜원)였다가 자기 맘대로 성을 바꾼다. 아담을 위해 이브를 만들어주기도 전부터!

해설가 역의 천사도 마찬가지다. 히브리 성경 속 천사는 모두 남자 이름을 가졌건만 한 쌍의 남녀 천사가 나란히 등장한다. 미카엘(정상훈)과 사라(구원영 최혁주)다. 게다가 이들 천사는 하나님의 지시로 인간들에게 금단의 열매(사과)를 따먹도록 유혹하는 사탄(뱀)의 역할까지 수행한다.

후반부는 미카엘이 각각 ‘흙덩이’와 ‘뼈다귀’라고 놀리는 아담(봉태규 홍희원 이동하)과 이브(이보람 이정미)의 몫이다. 반전은 여기서 이뤄진다. 뱀으로 변신한 천사들의 유혹에 넘어간 반항아 이브가 사과를 따먹은 뒤 아담의 동참을 요구하지만 순둥이 아담은 이를 거부한다. “하나님에게 순종하면 인정받는 기분”이라며.

이 작품은 여기서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다. 하나님은 왜 굳이 먹으면 안 되는 사과나무를 만든 걸까? 어떻게 인간이 자신과의 약속을 깰 것을 모를 수 있단 말인가? 이브는 정말 순진한 남자를 파멸로 몰고 간 최초의 팜파탈인 것일까? 에덴동산은 정말 인간이 돌아가길 꿈꾸는 ‘실낙원’일까?

뮤지컬은 이 지점에서 언뜻 기독교적 세계관에 반기를 드는 것 같은 긴장을 빚어낸다. 홀로 에덴동산에서 추방돼 늙고 병든 이브는 다시 돌아올 기회를 얻지만 영원한 생명을 거부하고 다시 세상으로 떠나간다.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따는 것은 그 다음이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짝을 잃느니 세상 전체를 포기하겠다는 결단의 산물이다. 그렇게 재회한 두 사람은 노래한다. ‘내게 천국은 그대(Paradise Is You)’라고. 그리고 이야말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고, 자유의지를 부여하고, 금단의 열매를 설치한 진짜 이유였음이 밝혀진다.

전통적 기독교 원죄론자들에게선 “지나치다”는 반응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이는 현대 신학과 일맥상통한다. 영원한 생명과 천국을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타인에 대한 사랑에 눈 뜨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한 가장 큰 목적이라는 것이다.

1시간 반의 상연시간 동안 극은 안정적 진행과 탄탄한 음악 구성을 보여준다. 하지만 피아노 반주로도 충분한데 굳이 무대 뒤에 5인조 밴드를 배치해 라이브 음악효과를 떨어뜨린 점이나 대형 스크린에 불필요한 영상을 남발한 점은 과유불급으로 보인다. 주인공 격인 이브 역할을 맡은 여배우들이 너무 신인급이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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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미국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작품으로 해외 라이선스 공연은 한국이 최초다. ‘지킬 앤 하이드’ 등을 조연출한 김효진 씨의 연출데뷔작. 9월 1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3만∼7만 원. 02-399-1114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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