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는 앞서 ‘得道者(득도자)는 多助(다조)하고 失道者(실도자)는 寡助(과조)라’ 했다. 道를 지켜나가는 자는 도와주는 사람이 많지만 도를 잃어버린 자는 도와주는 사람이 적다고 한 것이다. 그리고 도를 잃어버려 도와주는 사람이 적은 상황이 극단에 이르면 ‘親戚(친척)이 畔之(반지)하고’, 도를 지켜나가 도와주는 사람이 많은 상황이 극단에 이르면 ‘天下(천하)가 順之(순지)니라’ 했다. 이 말을 이어 맹자는 천하 사람들의 순종을 받는 사람이 친척마저 배반하는 그런 사람을 공격한다면 그 결과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以天下之所順의 以는 자격을 나타내는 介詞(개사)다. 天下之所順은 곧 得道者를 가리킨다. 親戚之所畔은 즉 失道者를 가리킨다. 故는 앞의 말과 뒤의 말을 원인(조건)과 결과로 이어주는 접속사이되, 여기서는 논리적 인과관계를 명시하지는 않았다. ‘君子有不戰이언정 戰必勝矣니라’는 군자는 싸우지 않으면 그만이거니와 싸우게 되면 반드시 승리한다는 뜻으로 대개 풀이한다. 혹자는 仁者無敵(인자무적)이란 관념을 여기에 적용시켜, 군자는 상대방이 信服(신복)하므로 애당초 싸움이란 없지만, 혹시라도 싸우게 된다면 人和(인화)를 바탕으로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는 뜻으로 풀이한다.
‘孫子兵法(손자병법)’은 전쟁이란 한 국가의 가장 중대한 과제라고 했다. 전쟁은 백성을 모두 살리느냐 모두 죽이느냐를 판가름하는 마당이요, 나라가 생존하느냐 멸망하느냐를 결정짓는 갈림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曹操(조조)는 전쟁은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만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당나라 시인 杜甫(두보)도 安祿山(안녹산)의 난 때 戰火(전화)가 속히 終熄(종식)되기를 기원하여 ‘洗兵行(세병행)’이라는 시에서 ‘安得壯士挽天河(안득장사만천하) 淨洗甲兵長不用(정세갑병장불용)’이라 했다. ‘어찌하면 장사를 구해 은하수를 끌어다가, 갑옷과 무기를 깨끗이 씻어 길이 쓰지 않게 할까?’라는 뜻이다. 병법은 전쟁이 잔혹하다는 사실을 일깨우고 전쟁을 막는 방법이다. 그런데 전쟁을 막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人和를 통해 내부를 견고하게 하는 것이라고 맹자는 말했다. 그 말이 타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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