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용기타]창조와 상상력을 원한다면 디지털기기의 전원을 끄자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지난해 겨울 프랑스 파리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가던 길이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을 넘는 순간 갑자기 내비게이션 화면에서 길이 사라지면서 하얗게 변하는 것이었다. ‘유럽 30개국 지도 포함’이란 말만 믿고 샀는데, 스페인 지도가 빠져 있을 줄이야. 뒷좌석엔 가족도 있는데…. 해발 2000m의 피레네 산맥 한가운데서 내 머릿속은 그야말로 ‘화이트아웃’을 경험했다.

그러나 잠시 후, 유리창에 붙은 내비게이션의 화살표가 사라지자 비로소 피레네의 눈 쌓인 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이후 물어보고, 돌아가느라 시간은 많이 걸렸지만 스페인 여행은 온몸으로 느껴지는 짜릿한 에피소드로 가득 찼다. 그러고 보니 내비게이션을 이용한 후부터 나는 창밖 풍경엔 별 관심이 없고, 그저 화면 속 작은 화살표만 보고 달려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감상하고, 잠자리에선 머리맡에 휴대전화를 두고 자고, 휴가지에서까지 디지털 기기에 의지하는 현대인. 이번 주에 나온 신간 중에는 디지털 정보 홍수 속에서 인간의 ‘생각하는 능력’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 눈에 많이 띈다.

‘깊은 사고’는 전략적 계획, 과학적 발견, 예술적 창조에 꼭 필요한 두뇌활동이다. 그러나 멀티태스킹 환경 속에서 인간의 생각의 속도는 좀 더 빨라질 수 있지만 생각의 질은 계속해서 떨어진다. 리처드 왓슨의 저서 ‘퓨처 마인드’(청림출판)는 멀티태스킹과 하이퍼링크로 가득 찬 세상에서 깊은 사고를 할 수 없는 현대인에게 경고의 목소리를 던진다. 저자는 살 빼기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불필요한 정보 접촉을 줄이는 ‘디지털 다이어트’와 ‘싱글태스킹’이 새로운 트렌드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견한다.

카트린 파시히, 알렉스 숄츠가 지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김영사)은 진정한 여행의 즐거움을 위해 내비게이션과 지도를 버릴 것을 제안한다. 내비게이션은 우리에게 좀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도록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재미와 감동까지 없애 버렸다는 것. 저자는 “만일 오디세우스가 길을 잃지 않았다면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라고 묻는다.

구글에서 검색하면 맞춤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인간은 기억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치매는 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젊은 직장인들도 냉장고 문을 왜 열었는지 모르고, 간밤에 주차한 차가 어딨는지 모르는 ‘디지털 치매’를 겪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조슈어 포어의 ‘아인슈타인과 문워킹을’(이순)은 평범한 남자가 1년 만에 기억력 챔피언이 되는 두뇌실험 프로젝트를 다뤘다. 저자는 기억력은 단순한 재주가 아니라 정보를 종합하고, 새로운 상상과 창조의 원천이 되는 능력이라고 강조한다.

복잡계의 현대문명에서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은 통찰과 직감의 능력이다. 주말엔 컴퓨터를 끄고 저자들이 제안한 방법을 실험해 봐야겠다. 먼 산을 바라보거나 기차를 타고 창밖을 보며 생각하기, 낯선 사람과 대화하기, 음악을 들으며 상상하기….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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