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公孫丑(공손추)·하’ 제2장은 맹자가 齊(제)나라 宣王(선왕)의 賓師(빈사)로 있을 때 일화를 기록했다. 어느 날 맹자가 제나라 조정에 나갈 준비를 하는데, 선왕이 사람을 보내 감기를 핑계로 대면서 자기 쪽에서 갈 수 없으니 조정에 들라고 요구했다. 맹자는 병이 나서 조정에 나갈 수 없다고 사양했다. 그러고는 다음 날 東郭氏(동곽씨)의 곳으로 弔問(조문)하러 갔다. 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 것은 병 때문이 아님을 일부러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선왕은 사람을 시켜 병문안하고 醫者(의자)까지 보냈다. 맹자의 종형제 孟仲子(맹중자)는, 맹자가 오늘은 몸이 회복되어 조정으로 향했다고 둘러대고는, 사람들을 시켜 맹자를 길에서 만나 조정으로 가라고 종용했다. 맹자는 하는 수 없이 제나라 대부 景丑氏(경추씨)의 곳으로 가서 유숙했다. 景子, 즉 景丑氏는 신하라면 군주를 恭敬(공경)해야 하거늘 선생은 군주를 공경하지 않는 듯하다고 疑訝(의아)해했다.
不得已(부득이)는 이미 우리말로 굳어졌다. 而는 어조를 고르는 허사다. 之는 동사다. 宿焉은 거기에 留宿(유숙)했다는 말이다. ‘內則父子, 外則君臣’에서 則은 병렬적인 사항들을 열거할 때 어조를 고르는 기능을 한다. ‘父子主恩, 君臣主敬’은 三綱(삼강)에서 부자관계와 군신관계의 특성을 구별 짓는 중요한 개념이다. 丑(추)는 경추씨가 자신을 가리키는 말이다. 王之敬子의 之는 포유문 속의 주어와 술부를 연결한다. 未見所以敬王也는 未見子之敬王也를 완곡한 어조로 바꾼 것이다.
맹자는 제나라 선왕과 군신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맹자는 경추씨의 말 가운데서 군신 사이에는 공경을 주로 해야 한다는 당위의 주장에 초점을 맞추어, 군주를 진정으로 공경하려면 신하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논쟁적으로 다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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